나는 아직 괜찮지 않아
내가 무시한 딱 한 가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랑 통화를 했다.
쉰다는 걸 알고나서부터 엄마가 매일 전화를 한다.
매번 같은 얘길 하긴 하지만
이렇게 매일 엄마랑 통화한 지가 10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 보니 벌써 1시간 30분째
그와 그녀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얘기했던 적이 있었던가? 예전에 단편적으로 얘기했을 땐 그런 사람들 얘기에 휩쓸리지 말라고 했었다.
오늘은 12월 말에 내 상황에 대해서 상사들에게 솔직하게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쉬겠다고 했던 것, 그리고 돌아왔을 때도 바뀌지 않았던 내 환경, 오히려 날 저격했던 것 같은 그의 코칭 내용, 그녀의 무관심, 나의 결심.
이런 환경에서 일해오다 보니 내가 너무 작아졌고,
이제는 더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너무 잘했다고, 매일이 조마조마했었다고,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했고,
연락이 안 오던 날은
'오늘 아무 일 없이 지나갔구나'
생각했었다고 한다.
나는 위험한 생각했던 것을 미안하다고 했고,
엄마는 더 큰사람이 되기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아껴 쓰지도 말라고 너희는 또 금방 벌 수 있다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대출받아서 써도 좋다고.
제발 건강만 하라고.
나는 딱 하나, 나의 건강만 챙겼음 됐는데,
딱 그것만 무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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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주일째 휴가지만 아직 괜찮아지지 않았어.
'괜찮으세요?'
어디서 나의 일을 듣게 된 사람들은 저렇게 묻는다.
덴장!
그래서 괜찮아질 것 같았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왔다.
쉬고 2~3일 차 까지는 그냥 회사 안 가도 되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바빠서 흘려보냈던 감정들이 폭발해서 상담 내내 (사실은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나는 아직 그/그녀를 만나는 게 무섭고,
그 공간만 상상해도 가슴이 답답하며,
나를 아프게 한 모든 것에 화가 난다.
에잉... 마스크가 콧물로 다 코팅됐네.
허양의 남편은 오늘 친구들과 정기 모임이 있다.
반년에 한 번씩 하는 모임이다.
그러니까 딱 6개월 전 지난여름 더운 어느 날,
이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 그는 허양의 위태로운 목소리의전화를 받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행히도 어느 편의점 앞에서 알바생의 도움으로 취해서 앉아 있던 허양을 찾았던 기억이 남편에게 스쳐 지나갔다.
그에 비하면 오늘은 얼마나 안정한가. 불안함도 없고.
왜냐하면 허양은 회사를 안 가고 집에 있으니까.
친구들에게는 10시에는 일어나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며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한 친구들이 본인들의 사례와 함께 여러 솔루션을 이야기해 주며 격려를 했으나 당장 유용한지 모르겠단 생각에 허양의 남편은 그 이야기들을 흘려보낸다.
그보다는 어서 집에 돌아가 허양이 어떤지 보고 싶다.
아침에, 회사를 안 가는 것이 며칠이 지나도 아직 자신은 괜찮지 않은 것 같단 허양의 말에, 수년간 쌓인 아픔이 그 사이에 풀리겠냐며 타박하고 집을 나온 것이 미안하다.
오늘은 가는 길에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가야겠다고 그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