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추남 Mar 07.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5)

나 회사 안 간다

꿈에 그가 나왔다.


꿈에서도 이것저것 나한테 시키긴 했지만 평소 모습보단 다정했다. 다정하게 설명도 해주고, 내가 이전 직장에서 했던 일에 관심 가지고 질문도 하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헤드락도 걸면서 친하게 대했다.

평소에 그 정도만이라도(헤드락 빼고-_-) 날 대해줬으면 어땠을까?


이전 회사에서도 참 마음이 힘들었었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고.

존재만으로 불편한.

그들이 보냈던 나를 향한 경멸의 시선들이

아직도 뚜렷하게 생각이 난다.

그래도 그땐 내 등짝을 때리면서 강해지란 말하는,

나를 아껴주는 보스가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갑작스러운 나의 이직 소식에도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응원해 줬던 보스도 있었다.

나를 믿고 따라줬고, 이직할 거란 말에 눈시울 붉히는 동료들이 있었다.

다들 표현이 세련되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여기도 나를 아껴주는 동료들이 있다.

같이 울어주고, 쉬라고 독려해 주고, 몸 챙기라고 해주고. 근데 그때와 다른 점은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리더는 없었다. 마음을 그랬을지언정 표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가 1번, 본인이 2번,

나의 성과에 도움이 되는 사람 3번.


그게 나쁜 건 아니라는 거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근데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 아닌가?


몸이 아파도 일에 차질이 있을까 봐, ‘병원 가봐라, 연차 내라 ‘ 그 한마디 해주는 사람 없더라.

몸관리도 능력이다. 주말에 컨디션 관리해라. 저녁은 먹고 일해라. 그런 말이 전부였다.

코로나에 걸려도  집으로 노트북을 보내줬었다.

마치 여기저기 아픈 내가 ,

몸도 약한 내가 ,

자기 관리도 못하고 일에 지장을 주는 죄인같이 느껴졌다.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니, 약 먹으면서까지,

죽고 싶으면서까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걸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감히 멈추질 못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오늘도.

회사 출근했던 시간에 눈을 뜨고,

이런저런 생각들에 또 마음이 불안하다.

약 한가득 입에 털어 넣고 나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오늘, 회사 안 간다.



허양의 가정은 부유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이 오히려 가까운 단어일지도.

그래도 그녀는 박사과정 때까지 과외를 하면서

스스로 학자금을 갚으며 공부했다.

이른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포스트닥터도 했다.

자신의 곁에 계속 두고 싶던 담당교수의 바람이 덧없게

제약회사 연구실장의 눈에 띄어 채용이 되었다.

그 연구실장이 등짝스매싱을 날리던 보스였다.

지금도 허양을 응원해 주는 그 보스를 봐서라도

잘하고 싶었다.

멋진 일 한다고 우러러보는 실험실 동료들과 교수님을

봐서라도 진짜 잘하고 싶었던 허양이다.


이렇게 총명하던 그녀의 첫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조그마한 어린 여자 박사, 연구실장이 직접 발탁한 인재에 대한 견제는 기존 기득권인 어른 남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대학시절에도 성차별이 없던 것이 아니었고 또라이가 없지 않았지만 직장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이제 막 정글에 발을 담근 허양의 불안감은 증폭했다.

게다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 했던가?

전날 즐겁게 술 마시며 언니/동생 부르던 사이였는데

다음날에는 무슨 이유인지 헛소문을 퍼뜨린다.

실력에  부친다고 생각했는지 팀 내에서 얄밉게 행동하며 허양의 실적을 가로채려고도 한다.

어른 남자들의 견제보다 같은 여자동료들의 앞뒤 다른 모습이 그녀를 더욱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발탁한 리더, 그 후임 리더 모두 그녀의

실력을 믿었고 지원하며 응원했고 좋은 성과도 얻었다.

동시에 견제하는 동료들은 일부, 그 외에 폭넓은 동료관계에서 많은 응원과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곳에서는 그런 보듬이 없었다.

허양이 바란 건 큰 보상이 아니라

잘했어라는 칭찬 한 마디, 수고했어라는 격려 한마디였다.


대한민국 직장의 리더십은 이게 문제다.

실무자로서 능력이 출중하다고,

회사를 오래 다녔다고, 경력이 길다고

관리자를 맡기는 관행말이다.

리더의 자질은 따로 있고 부족한 것은 교육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질 않으니 이렇게 리더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피드백도 받질 못 한다.



이전 05화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