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은 이미 지났고
퇴근시간이 25분 지난 시점 5:55
그는 회사 특정 조직에 대한 불만을 우리 팀이 있는 곳에 배설하고, 그녀는 실시간으로 그를 뺀 나머지가 있는 메신저에서 배설한다.
열 마디 말에 한마디 씩 대꾸해 주다 문득,
아, 이들은 똥을 싸는 중이다.
내가 왜 손으로 똥을 받고 있지? 싶어서 읽는 것을 멈추고 넘겨버린다.
니들이 배설한 거 대답 원하는 거 아니지?
내 똥도 안 받아 주잖아.
맞지?
4년의 시간 동안이었다.
7시에 출근해 일찍 퇴근하면 8~9시였다.
허양의 위에 ‘그녀’가 있고,
‘그녀’ 위에 ‘그’가 있다.
대한민국 직장에서 상사의 똥은 아래로 아래로
지휘체계를 타고 흘러내린다.
똥대신 칭찬이 흘러내려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허양의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 그녀도 듣지 않고 무성의한 대답만 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허양은 도무지 버틸 수가 없다.
차라리 이런 것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성격이면 어떨까?
결국 스스로가 잘못한 거 같아 자책을 한다.
이런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면 온몸에 긴장이 돈다.
그러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들이 너무 많다.
진통제, 소화제, 불안약, 우울증 약...
조금씩 자신의 상황을 주위에 이야기해 본다.
표현은 에둘러서 한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아서인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힘든지
전혀 공감을 못한다. 그건 허양의 부모나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용기 내어 힘이 나는 말을 들어보려고 전화를 하면
도리어 그들의 푸념과 불만들을 허양에게 쏟아내니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할 수없고 가족들 사이에서마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거 같다.
이 모습을 옆에서 보는 남편은 이제 그녀의 식구들도 밉다.
이러면서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이 위선 같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고쳐버리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늘어간다.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허양을 보면 눈물이 나고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상황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