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로 했다
모든 걸 놓아버렸다.
즐겁게 마셨고 즐겁게 대화했다.
간만에 즐거웠던 예전직장 생각이 났었던 술자리였다.
그 술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건
남편이 날 보던 화가 난 얼굴
목을 조르던 내 손
그걸 지켜보던 남편 얼굴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내 목소리.
그렇게 잠들고, 또 잠들고, 약을 먹고 또 잠들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또 잠들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그 와중에도 남편에게
‘오늘 동료가 없고, 일찍 통화해야 하고
시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정 준비도 해야 한다’ 말했다.
- 다음날 아침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신과 상담은 일주일 남았지만,
뭔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누군갈 만나야 했고,
나를 멈춰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처음 보는 정신과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할 줄 모르겠어서 오늘 왔다고,
힘들다고, 제가 저를 곧 해칠 것 같다고.
오열했다.
선생님은 입원이 필요하다 말했고,
그건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네가 선택해야 해 가 아니라,
‘그만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이렇게 일해준 나에게 회사가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회사가 그렇게 여기지 않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나를 챙기는데 무조건 집중하라고 했다.
응, 아는데, 그냥 나는 등 떠밀어 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회사를 관둔 내 생활을 상상하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일은 마음이 다시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흔들려도 괜찮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으니까.
허양은 퇴사를 결심했다. 그 사이 연차를 써서 회사에서 분리되기로 했다. 상사와의 소통을 도무지 직접 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부탁했다.
허양이 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고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을 해하는 것이 어제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그널이 있던듯하다.
허양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남편은 기억한다.
처음은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에 마중을 갔던 남편 앞에서 펑펑 울던 모습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절대 동료들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 헤어질 때까지는 정신을 붙들고
온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제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신호는 동료들과 헤어지고 나서부터다.
우는 모습을 보았을 때만 해도 허양의 남편은
술이 약해졌거나 일이 조금 힘들어서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일이 잦아졌고 강도는 심해졌다. 허양을 찾아 헤매던 밤들이 부지기수이다.
새벽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아 온 동네를 뒤지면서 느꼈던 불안감과 공포를 그녀의 남편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상황에서도 허양은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면 어디에 있던 남편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본인의 술자리 중간이든 누구와 있든 중요치 않았다.
제발 별일 없이 내가 갈 때까지만 안전하게 있길 바랬다.
화도 나고 불안했지만 만취에 정신 차리지 못하는 허양을 길가에서 발견하면 안도감이 왔다.
‘다행이다. 안전해서.’라며. 그게 바라던 전부였다.
그렇게 집에 허양을 데리고 오면 자책과 자해가 이어졌다.
허양의 남편은 이런 그녀가 밉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점점 그녀의 회사가 싫어졌다. 그녀 회사 주식도 팔아버렸다. 같이 술자리를 가졌던 허양의 동료들도 원망스러웠다 허양이 저녁자리가 있다고 하면 오늘은 별일 없이 지나갈까 걱정되고 수시로 카톡과 전화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불안하고 수치스럽고 미안했던 것은 허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도 그것을 안다. 오히려 전화기는 잊지 않고 꼭 쥐고 자신을 늘 찾아준 허양이 고맙다. 그리고 조금 더 일찍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어쨌든 회사를 관두겠다는 허양의 결심에 남편은 기뻤다.
회사를 관두는 것이 갑진년 청룡의 기운덕에 온 행운같이 느껴졌다. 부디 허양이 ‘일과 직장’에서 벗어난 일상을 다시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