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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May 18.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25)

쉬기 시작한 3개월 차에 내가 깨달은 것, ‘보람’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법원에 접수한 지 꽉 채운 2개월 만에 허가가 떨어졌다.

제주도 보름 살기 끝 무렵이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꼬박 이틀을 주민센터, 운전면허시험장, 구청, 은행 등을 돌아다녔고,

보험, 카드사, 통신사 등 고객센터 전화하며 이름 정보를 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주 쓰는, 꼭 필요한 것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변경되었다.

뭔가 새로워진 느낌.

개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제주 여행 때문이었을까?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해냈다는 마음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보람'이라는 것을 참 오랜만에 느꼈다.


일상 혹은 직장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었다.

일상은 항상 회사-집의 반복이었고,

특별한 취미가 없었기에 피곤함, 좌절, 무기력함의 연속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보람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제주살이 중,

햇볕아래 낮잠을 자고, (사실, 나에게 낮잠은 연중 몇 번 없는 이벤트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운전해서 클린하우스에 가서 쓰레기를 비우고 (제주도는 집 앞에 쓰레기들을 버릴 수 없다!!!)

장을 보고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운전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참 오랜만에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름을 바꾸느라 분주했던 이번주도

묘한 희열과 뿌듯함으로 한주를 보냈다.


소소한 일로도 보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데..

난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모질게 대했던 걸까.


보람은 작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나 혼자 해낸 나 스스로에 대한 작은 칭찬이 그 시작이다.


솔직히 앞으로 이것을 얼마동안 인지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을 혼자 깨달았다는 게 얼마나 기특해.

잘했다! 허양!


*보람: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뿌듯하다: 기쁨이나 감격이 마음에 가득 차서 벅차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Reborn

모두 타 버린 재속에서 나오는 불사조라면 과한 걸까?

허양의 남편이 보기에 요새의 허양은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같다. ‘부활’ 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모든 것을 멈추어야 했던 그때는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아직은 ‘회복’이나 ‘복귀’라는 단어를 꺼내기는 이르지만

천천히 하나씩 새롭게 일구고 잊었던 것을 느끼는 허양의 모습이 남편은 너무 좋다.


번아웃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태운 것.

양초가 모두 타고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듯

사람도 번아웃이 되고 나면 그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어떨지 기대할 수도 있고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옆에서 잘 도와주면 좋겠다고,

허양의 환우이자 남편의 오랜 친구는 이야기했다.

맞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예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앞으로 한 달 뒤 혹은 반년 뒤, 허양의 모습은 어떨까?


‘고장 난 시계’

허양은 스스로가 고장 난 시계 같다고 했다.

시계는 건전지가 닳고 이곳저곳 보이지 않는 곳이 고장 나고 있었는데, 느려진 시침을 억지로 당기고 겉으로 고장 난 곳은 테이프로 때워가며 쓰다가 결국 멈춰버린 시계 같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시계에 건전지도 충전하고 (1/3 정도?) 고장 난 부품도 바꾸어서 다시 시침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잘 움직일까 걱정도 되지만 잘 고쳐졌으리라 기대도 된다고 한다.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은 매일 어딘가에는 있다고 하던가?


어딘가에 있을 행복과 보람을 찾아서

오늘도 허양은 힘을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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