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글의 첫 에피소드가 있던 날부터 에필로그를 쓰는 오늘까지 약 5달이 흘렀다. 지금을 기준으로 2주 반 전에 허양은 퇴사를 했고 지난주에 퇴직금을 받았다.
더 이상 그녀는 ‘회사원’ 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다만 꽤나 긴 에필로그가 될 듯하다.
이 글을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이 물어보았다.
‘너가 ‘허양’이야? 실제야 허구야?’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아파서 힘들었고 누군가는 아픈 이를 옆에서 보느라 힘들었단 것이고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연재의 기획은 우울이나 공황장애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다. 휴직이나 퇴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초반의 글처럼 회사 사무실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대한민국 직장인이 느끼는 답답함, 그에 대해 쏟아내는, 그래서 읽는 분도 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내용의 글을 쓰려고 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은 느꼈을 부당한 지시, 의미 없는 회의, 끝없는 야근 등등,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였던 것.
그러나 ‘허양’의 일기는 애초의 기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누적된 번아웃의 폭발, 자살 충동, 심각해진 우울과 공황장애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본인의 노력, 주위의 응원 등. 그러니 기획과는 다른 방향의 연재글이었고 애초에 기획한 것이 없었으니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겠다. 연재가 끝나고 나면 다른 형태의 도서로 다시 만날지, 더 추가되는 내용들이 있을지, 그런 것들은 아직아무도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허양’은 퇴사를 했고 매우 매우 좋아졌습니다라고 마무리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녀를 힘들게 한 여러 일들과 감정, 더 나아가 이런 기질을 가지게 된 원인이나 과거의 모든 지난 것들은 지워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어느 날은 모든 감정과 기억이 되살아 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 잊고 일어나.’, ‘그만 생각해, 너만 손해야.’ 따위의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같이 화내주고 욕해주는 게 낫다. 어차피 그만 생각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가 때가 되면 할 일이다.
이건 ‘허양’뿐이 아니라 다른 우울증 환우들, 큰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 등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장 힘든 사람들은 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도와준답시고 저런 이야기를 해주면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다. 누군들 잊고 싶지 않아 못 잊는 거겠나? 그렇지 못하니까 힘든 건데…상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 무언지 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의도만 생각하고 조언했다면, ‘나는 너 좋으라고 한 소리인데..’라고 억울해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 주시길.
그렇지 못하겠다면 그냥 입 다물고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제일이다.
연재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고백’을 해주셨다.
나도 약을 먹고 있어, 사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
내 주위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우울증과 공황, 수면장애를 앓고 있단 사실에 놀라웠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픈데 그것을 쉽게 이야기하고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슬퍼졌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답변은 50.7% 라고 한다. 그러니 주위에 숨기고 병원에 빨리 가지 않고 그러다가 더 악화되고 그러니 또 숨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아래 조사에 전 국민 10명 중 7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다고 한다.
‘허양’은 주위사람들이 보기에는 늘 밝고 농담도 잘하고 건강한 이미지였기에, 지금의 일이 있고 나서는 ‘늘 웃어서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너가 우울증이라니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밝은’ 사람들은 ‘어두운’ 면을 보이기 싫어 더욱 밝게 보이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흔한 오해로 우울장애 환자들은 늘 울상에 무기력해 보일 거라 생각하는데 가장 큰 오해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알 수 있을 텐데, 사실 ‘우리’가 주위에 관심이 별로 없거나 혹은 어떻게 해야 알아차리는지 잘 모르는 것도 이유일 듯하다.
아래 광고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리라.
https://youtu.be/NFo4hNZ6gW4?si=8kHspnj59ENZ4jkm
정신질환은 전치 몇 주라고 진단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딱지가 생기듯 상처가 치유된 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외상처럼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한데 얼마나 이해를 못 하는지 보여주는 내가 들었던 조언의 사례 하나 공유하면.
첫째,‘얼마나 아픈 거예요? 심각해요?’.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체의 질병은 상처깊이가 어때요, 암이 몇 기예요, 전치 5주래요라고 설명이 되는데 이건 도무지 뭐라고 답해야 할지. 그러니 궁금해도 저런 질문하기보다는 ‘많이 힘들었겠어요. ‘라고 말해주길 권한다. 얼마나 아픈지 알아봤자 뭐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잖은가?
둘째, ‘신앙을 가져보는 게 어때? 아이를 가져보는 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가장 쓸모없는 조언이었다. 평소에 얼마나 조언을 못했으면, 세상을 보는 뷰가 얼마나 좁으면 이런 걸 조언이라고 할까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앞서 야야기했듯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말들이 많다. 그러니 그냥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시라.
‘허양’의 일기만 쓰지 않고 남편의 이야기를 같이 붙인 이유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는 종종 있는 반면, 그들의 가족이야기는 쉽게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누군들 아프고 싶어 아프겠으며, 누구보다 제일 힘들고, 자신들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힘들어진 것에 미안해하고 눈치 보는 것은 환자 본인이다.
그럼에도 그런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생활도 녹록지 않다. 처음에는 왜 너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냐며 분노하고, 이후에는 어떻게 나아질지 고민하며 고군분투하고 그렇다가 지치기도 한다. 일상이 무너져 힘들어하다가 가족관계가 파탄이 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강해지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환자의 가족들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워 허양의 남편 이야기도 같이 써보았다. 아직 가족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그가 믿는 것이 하나 있다.
‘이건 언젠가는 분명히 나아질 수 있는 병이다.’
아무튼 끝이 찬란하진 않지만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의 연재는 이렇게 마친다.
연재는 끝났지만 허양과 그녀의 남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지 못하는데도 응원해 주신 독자들 덕분에 더 큰 힘을 얻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무리로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어렵지 않은 방법을 두 가지 소개해본다.
1.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박보영 주연의 드라마인데 그간의 편견적인 모습을 거두고 정신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주위에 환우를 가족, 친구, 동료로 두고 있다면 꼭 끝까지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https://m.blog.naver.com/louple/223262863971
2. 도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내가 하는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었구나 하면서 반갑기도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던 책.
https://youtu.be/M9EyG4jqKaM?si=CEyajWNytVEiIfM-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 “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