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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Jun 29.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34)

퇴사는 했다만...

퇴사를 했고, 나는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


6월 어느 날 공식적으로 나는 퇴사를 했다.

퇴사하기 전까지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이게 맞는 걸까 수없이 되뇌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에 잠을 설쳤었다.


인사 당일.

걱정했던 것보다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아쉬운 표정을 지어주었다. 나를 보고 안절부절못하던 그녀에게는 사무실을 나오기 전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나중에 꼭 식사해요"


신기하게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감사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인사를 다 마치고, 직접 인사드리지 못했던 분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아, 내가 회사생활을 나쁘게 하진 않았었구나' 싶어 오히려 뿌듯하기도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퇴사를 했다는 후련한 마음만으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소속이 없는 '자연인'의 상태가 아직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생각보다 큰 이슈 없이 잘 마쳐서 그런 것인지..

퇴사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5년 정도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음에도 아직 연결된 무언가가 남아있고,

다 내던진 줄 알았던 불안감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괜찮아진 줄 알았던 내 증상도 함께 돌아왔다.


나 때문에 누군가를 고생시키고, 걱정시키고, 나를 다치게 하는 일들이 조금씩 다시 시작되면서

'아.. 나는 아직 나은 게 아니구나.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구나.' 좌절감이 들면서 또 한 번 우울해진다.


천천히 해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이직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아침이 오는 게 싫어서 밤에 잠을 자는 게 두렵고,

약을 먹지 않으면 심해 속을 혼자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오늘은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오랜만에 허양이 일기를 썼다.

그녀의 일기를 기다리던 남편은 그동안 기대와 불안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누구 말대로 ‘원인(회사)’을 제거했으니 이제는 ‘결과(우울증)’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말처럼 기대감이 있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그동안 써내오던 글로) 뱉지 못하는 허양의 모습에 태풍전야의 불안감도 느꼈다.


5말 6초, 허양의 두 번째 제주살기는 기대와는 반대로 그녀를 힘들고 외롭게 했고, 그때 그녀 곁에 있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커졌을 것이다. 이후 ‘퇴사’라는 절차를 보냈지만 허양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감지한 남편의 걱정대로 예전과 같은 증상이 돌아왔다.

남편은 처음에는 두려웠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

두 번째는 절망스러웠다.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절망감. (‘지옥’보다 나은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이 모든 게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신의 탓인 것만 같기도 하며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자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옥이 있다면 천국이 있고 절망이 있다면 희망도 있을 것이다. 우린 그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결국 찾고 말 것이다. 늘 그랬듯이.


두려움을 느낀 다음 날은 펑펑 울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남편은 평생 소리 내어 울어본 기억이 없다.

절망감을 느낀 다음 날은 어떻게 하면 놓아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오후가 되자 살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서로가 살 수 있을지를 허양과 이야기했다.

그리고 희망을 발견했다.


한 주에도 여러 번,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천당과 지옥을 오가겠지만 천당에 오를 시간을 더 가질 거고 희망을 더 자주 느낄 것이며 다 자주 웃는 미래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허양과 그녀의 남편은 하루를 살아낸다.


전이수 작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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