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추남 Jul 09. 2024

대학병원에 가다 (부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브런치북의 규정상 최소 10개에서 최대 30개의 글이 완간의 조건이란다.

덕분에(?) 이상하게 1,2부로 나눈 걸로 모자라 2부는 프롤로그를 썼는데도 완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 4회만 더 쓰기로 한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상급종합병원에 간 ssul 푼다.

생각해 보니 제목이 틀렸다. 우리가 간 곳은 대학병원이 아니라 기업병원이다.(편의상 대학병원이라 부르자)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Top5의 위상을 갖는 곳이고, 지난 2월 병가를 위해 진단서를 받으러 간 2차 종합병원의 선생님도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받는 것을 추천하셨고 (그때는 입원도 권장했으니), 권해 주신 선생님이 마침 이 대학병원에 계시기도 하고 그 분을 유튜브로도 많이 보았기에 뭐라도 다른 말을 해주실까 기대 혹은 염려하며 가본다. (우리가 본 유튜브 영상에서 이 선생님은 퇴사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ㅜㅜ)


사실 진작에 2월에 진료신청을 했는데 그놈의 의(사) -정(부) 갈등 때문에...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고 7월이 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고...

그 때문에 최근에 크게 다친 매부는 모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부당했지.... 화가 난다!!!


아무튼, 아무래도 병원의 크기가 다르다 보니 온갖 종류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다.

주차부터 출입까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벌써부터 큰 병원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나도 아파지는 것 같다.

이런 느낌 때문에 병원에 오는 게 싫다. 너무도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마치 나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혹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아픈 것 같아서.


어렵사리 우울증 센터, 정신의학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아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고 불안해한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여기 왜 왔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을 까봐, 그러면 자신은 아프지도 않은데 엄살 피우고 회사까지 관둔 '루저'가 될까 봐 두렵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서 수차례 이야기 했던 것을 다시 해야 하고 힘든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할까 봐 무섭다고 한다.


나는 모든 질병은 3차 병원은 1차에서 2차로 2차에서 3차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3차 병원부터 가는 것은 진료과잉이라고 믿는데, 게다가 우리는  지난 4개월간 1차 병원에서 꾸준히 진료받았고 상담까지 받으면서 나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2월에 신청한 것이 이제야 가능해서 온 이곳, '대학병원'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을까 봐 두려웠다. '지금 동네병원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심각해요.' 같은 말..

그래서 아내의 감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힘들어도 제대로 진료를 받아보길 바랐고, 별로 아프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질문지를 작성하고, 1차 병원에서 받은 의뢰서와 처방전을 가지고 예진을 본다.

'어떤 게 힘들어요?', '회사에서는 어땠어요?', '원가족과는 어떤가요?'.....

아내가 수도 없이 많은 의사들에게 받았던 질문들이다. 그녀는 힘들지만 가능한 담담하게 대답하려 애쓴다.

예진이 끝나자마자 다음날 예약되어 있던 다른 대학병원 진료는 취소한다. (의료파업이 심해져서 지난 2월 여러 곳에 예약을 신청했다). 이걸 또다시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더니 약을 줄여보자고 한다.

1차 병원에서도 약을 줄여볼까 했지만 그렇게 했을 때 힘들어질까 봐 쉽게 줄이지 못했다.

걱정은 되지만 줄여보기로 한다. 그 후 경과를 보고 업데이트된 처방전을 1차 의료기관에 전달할 거란다.

이곳에 자주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다.

줄인 약을 먹어보고 다음 주에 상황을 다시 보잔다... 어? 저희 이번주에 제주도 내려가는데요..

그러면 일주일만 있다가 가라고 하신다... 네? '어떡하지' 란 생각이 내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

아내가 '지난 아픈 기간 동안 제주에 갔을 때 경험이 좋았어서 이번에 3주 다녀온 후에 보는 게 좋겠어요. 줄인 약을 그동안 먹어볼게요. 제주에서라면 용량이 줄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라고 제안했고 의사도 받아들였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대학병원 의사'라는 권위자의 말에 쫄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한 아내의 모습에 ' 맞아, 이 친구 이렇게 똑 부러지고 멋진 사람이었지.' 라며 대견하다 생각했다.

약을 병경하는 것뿐 아니라 혈액검사도 해보자고 한다. 이건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싶다.

여러 호르몬, 유전적인 검사를 하는 것이 정신 질환에 중요하다고 들었다.

(이게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의학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대학병원' 답게 다른 검사도 해야 한다. 굉장히 긴 내용의 심리상담 설문지를 작성하고 전기신호를 통한 스트레스 검사도 해야 한다. 가볍게 면담정도 할 줄 알고 왔는데 벌써 4시간째 병원에 있다.

온 김에 할 것 하고, 덕분에 약도 줄일 계기도 생기고, 수면제도 안 먹게 되었고, 유명한 의사시니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보셨겠냐 라며 기대감도 가져본다. '공황'이 수면제, 술 등과 만날 때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도 들어서 그간 아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더 나쁘다란 이야기를 듣지 않아 너무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입원을 권하면 어떡하나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대신 당분간 커피를 비롯한 카페인을 삼가야 한단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이런...

아내도 도와줄 겸 제주에 가서는 나도 카페인 든 것을 같이 안 먹어 볼 생각이다.

음주는 어떻냐고 물으니 독주는 피하고 가볍게 하란다. 와... 사람들 만나 술자리 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가벼운 술은 할 수 있네? 럭키비키잖아~


쉽지 않았다. 에너지를 많이 쓴 하루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더 나아질 수 있는 거구나' 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왔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주위의 환우들도 보면 무서워서 2차 혹은 3차병원까지 가기를 주저하는데, 우리 아내는 참 멋지다.



대학병원에 있으니 많은 군상들이 보인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온 사람들도 많고 애들도 많고.


어떤 할머니가 간호사의 안내를 듣는데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보다. ' 칠이요? 일이요?' 간호사가 큰 소리로 물어보는데 그조차도 안 들리는지 '뭐라고?' 란 표정만 짓는다. 다 마치고 일어나시더니 엉뚱한 폐문 방향으로 가신다. '할머니 거기 아니에요? 할머니~~ 거기 아. 니. 라. 구. 요!'라고 뒤에서 간호사가 외치지만 듣지 못하고 계속 가시다 엉뚱한 곳이라 느끼셨는지 뒤돌아 오신다. 보다 못한 보안요원이 일어나 안내해 준다.

'저분 보호자야.' 처음부터 상황을 보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라고? 아니면 도대체 환자는 어떻다는 거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의 엄마.

'00아, 너 가면 안돼. 진료 보러 온 거잖아..' 엄마가 이야기하며 아이의 팔을 붙잡는다.

아이는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터벅터벅 출구 방향으로 간다.

'엄마 최근에 수술받아서 힘들어. 왜 그래... 오늘 진료받아야 해 00아..'  엄마는 애걸하듯이 아이에게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듣는 체도 하지 않는다. 혹시나 다른 상황이 생길까 봐 나도 계속 쳐다보았고 앉아 있던 간호사도 나와서 살펴본다. 보안요원은 이런 상황이 여러 번인지 '에휴..' 하더니 일어난다.

누가 보면 '금쪽이'이고 엄마 말 안 듣는 잼민이로 보였으리라.

나는 '이제야' 저 친구 마음이 참 힘들겠다란 생각도 들고 엄마는 얼마나 괴로울까란 생각도 들며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보니 너무 힘들었는데도 나아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의젓하게 있는 아내가 고맙게 느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