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볼게요 ^_^;
제주살이 3주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20일.
오고 가는 날, 숙소 이동하는 날은 여유가 없고 20일 중 주말 제외한 working day는 14일이니 사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오기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짧은 시간일 줄.
그래서 사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었다.
중국어 교재, 읽을 책 등. 오기 전에 다 빼고 칼림바 들고 왔는데 한 번 치고는 꺼내지도 않았다.
아니, 못 꺼냈다.
왜냐하면 그런 것 말고 다른 걸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만만하게 생각했다.
대단할 정도는 아니어도 그래도 뭔가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했나 보다. (우스개 소리지만 나와 아내는 ‘마음의 감기’란 말에 반대하기로 했다. 대신 ‘마음의 당뇨’를 제안했다. 감기라고 하면 약 먹고 쉬면 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그보다는 당뇨처럼 꾸준히 관리하면 정상에 가깝게 살 수 있지만 조금만 관리가 안 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에 더 가까우니까)
그러나 정작 깨달은 사실은 이것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란 것, 우울증 이 녀석은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응원해 줘야 나을 수 있는 놈이란 걸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굉장히 천천히 나아질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몰랐던 거다.
내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비단 심각해진 올해 말고도 작년까지 장기간 약을 복용했지만 그렇게 관리되고 나아질 줄 알았지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재택근무를 하니 온종일 아내와 있으면서 자연스레 관찰을 하게 되었고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할 수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온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다. 관찰일기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일지를 보니 모르던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아침엔 이렇고 저녁엔 이렇구나. 저 사람을 만나면 요렇고 이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되는구나 알았고, 이런 말엔 어떤지 저런 말은 또 어떻게 느낄지, 무슨 느낌이 필요한지 등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출근하고 혼자 있던 집, 내가 동행하지 않고 왔던 제주, 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이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제주를 같이 온 게 너무 미안했다.
가끔 과거의 우리 사진을 보면 슬퍼지고는 한다.
아내는 더 이상 그때처럼 웃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잘 웃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야외활동 좋아하던 아내는 지금은 웃음도 적어지고 친구들 만나기 조차 힘들어하고 산책 나갈 에너지도 없어한다. 예전에는 너무 잘 웃는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과해도 좋으니 그때의 반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우울장애가 이렇게 무서운거라)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느끼는 게, 함께 있으면 잘 이야기 나누고 웃고 즐기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런데 내 눈에는 이제야 보인다.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웃어주기 위해 얼마나 억텐을 쏟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의 이런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또 슬퍼진다.
(흔히들 우울증 환자라고 하면 24시간 축 처져있을 줄 안다. 그렇게 에너지가 적어진 사람들이 모임에서 애써 웃으며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상상도 못 하면서)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듯, 아픈 어른을 보살피는 데도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아내의 주위에 그녀가 마음 편하게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도 편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녀의 가족에게마저도 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절망적이냐고?
아니!
울고 싶을 때는 있었지만 여기는 제주잖아.
서로 많이 느꼈고 알게 되었고 힘을 얻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도 그랬기를 바란다)
그러니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고 예전처럼 밝은 웃음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얻어 간다.
물론 매우 느리고 종종 지칠 거지만 그래도 힘낼 거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점점 그녀를 이해하고 도와줄 거고 그렇게 그녀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러니까 잘 살아볼게요 ^_^b
마음 같아서는 ‘아팠지만 퇴사했고 싹 다 나았어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쉬울 병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니 그녀에게 ‘회사 관뒀는데 아직도 아파?’,’ 언제까지 쉬려고 그래?’, ‘이제는 이런 거라도 좀 해봐.’ 같은 말 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내가 먼저 저런 이야기할 사람은 되도록 안 만나게 하겠지만 가끔 뭣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가 무너지기도 한단 말이오. (대부분 본인이 뭣도 모르는 사람이란 걸 모른다. 하긴 알 수가 있나. 우울증 환자가 가족인 사람들의 상당수도 모르는걸)
이렇게 우리의 함께 하는 제주살이 3주를 끝으로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의 연재를 마친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5개월간 우리의 일기를 봐준 모든 독자에게 감사하며 다른 많은 우울, 공황, 불안 장애로 힘들어하는 환우들 그리고 그 가족들도 힘을 내라고 응원하며 연재글을 마칩니다. 조금이라도 이해되고 공감되었다면 저희의 글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리고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이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래는 진짜 제주 포토 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