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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Jul 13. 2024

제주에서 온 일기 (부록)

나는 아직 불안해, 조금만 힘 내줘


잔소리가 늘어간다.

짜증이 늘어난다.

쉽게 지친다.

가끔 어지럽고, 온몸이 나도 모르게 떨려서 무섭다.

언제쯤 나아질까 조바심이 난다.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나를 남편이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


퇴사를 하고서도 나는 단번에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모든 게 어색하다. 불안하다.

다행히도 우울감은 전보다 덜하다.

하지만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될 것 같은데, 언제쯤 용기가 날까 답답할 때가 많다.


대학병원을 다녀왔는데 약을 줄여보자고 했다.

혹시나 내가 가짜로 아픈 건 아닐까? 걱정된다.

(검사 결과는 7월 말이나 되어야 알 수 있다.)

"나아졌다면 좋은 거지!" 남편의 말에 조금 위로를 삼지만,

다시 '괜히 그만둔 건가' 하는 걱정에 사로 잡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뭐 할까 생각이 들고,

주위에서 수많은 응원의 메시지들을 받지만,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내가 지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뭔가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답도 왠지 다 틀린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제일 걱정인 것은 여전히 몸 여기저기가 아픈 나의 건강과,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는 남편이다.

둘 다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이게 지금 나의 모습이다.

그래도 명백하게 4개월 전보단 나아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두렵다.

아직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걸까?


일어나자마자 키보드를 집어선 지금도 뭔가 써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홀로 거실에 앉아 있다.

약을 먹어봐야겠다.

그러면 조금 편안해지겠지?


나를 위해 우울증 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위해 아침이라도 준비해 봐야겠다.  오늘도 나와 남편을 위해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


오랜만에 기대하지 않았던 허양의 일기가 전해졌다.

불안해하지만 그 속에 ‘희망’의 단어를 보고 그녀의 남편은 마음을 놓는다. 그런 일말의 가능성도 없을까봐 걱정했으니. 그들은 ‘오늘’,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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