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어려운 엄마와 아들
아이가 옹알이를 할 때부터 잠들기 전에 대화를 해왔다. 의미 없는 소리일 수 있지만 내 말에 마치 ”응 “이라는 대답을 해준 뒤로. 여섯 살인 지금은 꽤나 활발한 대화가 오간다. 이 때문에 우린 불을 끄고 누워도 한참 뒤에 잔다. 어릴 때는 에너지가 다 빠질 때까지 놀다가 잔 날이 많은데, 이제는 유치원도 가고 해야 하니, 특정 시간이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청하지만,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 서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 장난치는 대화 등등으로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가곤 한다.
사실 아이랑 이렇게 잠드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만, 이러다 보면 너무 늦게 자서 내일이 걱정되는 날도 많다. 그래서 종종 아이가 늦게 자서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불 딱 끄고 말 안 하고 재우면 잔다고 하는데... 잠들기 전에 꽁냥꽁냥 하다가 자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이 방법이 우리 집에서는 잘 안 통한다.
가끔 정말 너무 늦게 자는 것 같은 날이나 내가 너무 힘들면 일부러 자는 척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이삼십 분 정도 혼자 뒤척이다가 잠들기는 한다. 괜히 엄마한테 더 폭 파고 들어서 안겨 보기도 했다가 엄마가 자나 싶어서 다른 곳으로 가서 누워보기도 하고. 내가 말을 안 하면 아이가 엄마의 기분을 살피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이렇게 엄마 눈치를 살피면서 잠드는 아이를 못 본다. ‘내가 조금만 받아주면 충분히 즐겁게 대화하다가 잠들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대화를 하면 재우는데 한 시간이 걸리고, 대화를 안 해도 삼십분정도 걸리니까 그냥 전자를 택하는 것 같다.
언젠가 아이 혼자 방문을 닫고 들어가 혼자만의 세계에 살기 시작하면 이 날들이 그리워질테니.
최근에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몇 장면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장점 배틀
준이는 귀여워.
준이는 밥을 잘 먹어. (골고루는 아니지만 먹을 때는 잘 먹으니까)
준이는 이를 잘 닦아. (아직도 치약을 싫어하지만 충치가 생긴 뒤로는 매우 협조적이고, 충치 치료를 받은 뒤로는 더 협조적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하루 흐트러져서 내가 화를 내게 되긴 했지만. 그 힘든 치료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준이는 레고를 잘해.
준이는 글씨를 잘 읽어.
준이는 착해.
준이는 잘 웃어.
준이는 게임을 잘해.
준이는 달리기를 잘해.
준이는 칭찬을 잘해.
이 중에 내가 진짜 해 준 말도 있고, 어떤 말은 해줬는데 기억이 안 나서 못 적은 것도 있고, 어떤 말은 어제는 못 해줬는데, 다음에 또 이렇게 대화가 오간다면 해주고 싶은 말도 있고.
아이도 나에게 이런저런 칭찬을 해주었다.
천사같이 예쁘다. 착하다. 등등.
배틀하듯이 장점을 말하기.
참 서로 기분 좋아지는 일이었다.
마음 한편에는 ‘매일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주면 참 좋을 텐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끔은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버럭 화를 낼 때가 있어서. 나름대로 내 입장에서도 여러 번 좋은 말로 알려주면서 넘어가다가 내는 화이지만.
감정 공유
나 : 요즘 준이가 가장 귀여운 순간은 언제일까?
(잠깐 뜸 들이다) 엄마가 데리러 가면 달려 나올 때.
아이 : 내가 신발도 안 신고 문까지 뛰어갈 때?
나 : (하하하) 응.
하루 중에 엄마와 아이가 가장 기쁜 마음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하원 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는 아이들 중에서도 감정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이라 이때 “우리 엄마다!” 하면서 정말 반갑게 달려 나온다. 잠들기 전에 이 대화를 하던 순간도 참 즐거웠다.
나 : 지금보다 늦게 데리러 가면 어떨 것 같아?
아이 : 마지막에 오는 건 안돼.
나 : 선생님이랑 둘이 놀면 되잖아.
아이 : 그건 안돼. 지금이 좋아.
1분 차이로 마지막으로 데리러 간 엄마가 된 일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 순간이 별로였나 보다. 올해 처음으로 벨소리가 울리면 누구 엄마인지 확인하고, 집에 가는 경험을 하는 중이라 벨소리마다 기대하고 실망을 한 횟수가 많은 날은 기분이 안 좋았던 듯하다. 내가 우리 반 꼴찌라는 기분이 싫은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감정이다. 조금씩 온전한 내 시간을 늘려서 규칙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은 좀 어렵다. 아이 감정에 충분히 공감을 하기 때문에... 이 연결고리를 쉽게 끊기가 어렵다. 안정되는 듯하다가도 이런저런 이벤트들이 자꾸 생기기도 하고.
엄마 : 준이는 엄마가 막 소리치면서 화낼 때랑 엄마가 울 때랑 어떤 게 더 싫어?
아이 : 소리치면서 화낼 때. 엄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 : 그럼 우는 건 괜찮아? 준이는 엄마가 울면 마음이 어때?
아이 : 안 좋아. 근데 화내는 게 더 싫어.
엄마 : (아이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왠지 내가 소리치면서 화냈을 때 아이 심장이 더 많이 두근거렸을 것 같은 마음에 짠했다.) 앞으로 화 안 내려고 노력할게. (사실 아예 안 낼 수 있다고 약속은 못 하겠고. 종종 이렇게 노력은 해보겠다고 말한다. 후회할 행동을 또 반복하는 인간 엄마지만.)
엄마 : 준이는 언제 속상해?
아이 : 친구가 내 거 무너뜨릴 때. 그리고 친구랑 같이 집 만들면서 놀기로 했는데, 나한테는 조금만 하고 (양손 엄지, 검지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면서) 가라고 해서 속상했어.
최근에 내가 좀 속상해서 울기도 하고. 평소보다 잦은 화를 냈던 것도 같아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의 속상했던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 보았다. 집에서는 아이가 나한테 심하게 혼날 때 말고는 울음이 없는 아이인데, 유치원에서는 속상할 때 왜 우는지 이유는 말하지 않고 울음으로 감정을 처리하는 때가 종종 있다고 하셔서 일부러 좀 속상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했던 것이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들인데... 이것이 아이의 사회생활이려니 싶었다. 아무래도 외동이다 보니, 집에서는 누군가의 방해를 받는 경험을 하지 않다 보니 유치원에서 닥치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처리하는 것에 아직 서투른 듯하다.
사실 유치원 첫 학기에는 울음이 거의 없다가 두 번째 학기부터 이런 습관이 생겼다. 선생님은 안 그러던 아이에게 조금은 좋지 않은 습관이 생겨서 이런 습관이 강화되지 않도록 일부러 반응해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울음이 길지는 않다고 하시면서.
아이가 두 번째 학기부터 단짝 친구도 생기고 유의미한 교우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진짜 사회를 느끼기 시작해서 친구 관계에서 속상한 감정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얼마 전 상담 때도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나는 그냥 외동이라 그런가 봐요 하고 넘겼다. 소심한 엄마인 내 마음속에는 계속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는 욕구도 강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컨디션 관리인 듯했다. 피곤할 때 멘탈이 약해지는 아이라.
사실 나도 육아 중에 너무 힘들면 울음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라. 울어서 스스로 풀 수 있다면 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자주 우는 것은 좋게 보이지는 않으니... 좀 더 크면 감정 처리를 좀 더 성숙하게 하는 때가 오겠지 싶다.
포켓몬스터 맞추기 퀴즈
아이 : 엄마! 포켓몬 맞추기 게임하자!
나 : 그래!
아이 : 엄마가 먼저 문제 내봐!
나 : 손에는 파를 들고 있고, 입은 넓적한 친구는?
아이 : 파오리!
아이 : 꼬리가 뾰족뾰족한 포켓몬은?
나 : (음...)
아이 : 피카추! 피카추잖아!
나 : 물대포를 쏘는 포켓몬은?
아이 : 꼬부기!
아이 : 몸이 길고, 돌로 되어 있어!
나 : 롱스톤!
아이 : 눈이 많고, 다리가 네 개이고, 여기랑 여기가 뾰족뾰족하고... (이런저런 특징을 막 자세히 나열하는데... 아이가 상상한 포켓몬이라 설명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 뭐지? 음...
아이 : 커로 시작해!
나 : 아! 커스터! (아이가 만든 가상의 몬스터이다. 왜 이 이름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아이에게는 피카추처럼 익숙한 이름이다.)
좋아하는 노래 공유
나 : 요즘 엄마는 이 노래를 좋아해. 준이는 이 노래 어때?
아이 : 좋아! 근데 내 노래 듣자! 내 마음이 기쁘단다! 이거 추천이야!
이렇게 이런저런 노래를 같이 들어본다. 어느 날은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나 : 준이야 이 누나 이쁘지? 노래도 잘해! (설인아의 여유야 노래를 보여주면서.) 엄마 요즘 이 노래가 좋아.
아이 : 누나 예쁘다. 엄마보다 예쁘다.
당연한 것인데, 흠칫. 항상 엄마 예쁘다고 하루에도 백번 말하는 아이인데 누나가 더 예쁘다니까 흠칫했다.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이제 곧 아이돌 누나들 좋아하겠구나.
책 미리 보기
아이 : 내일은 받침 구조대 책 꼭 보자! (책도 더 이상 안된다고 불을 끄고 누웠더니... 읽고 싶었는데 읽지 못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 : (아이가 말한 책이 포함된 시리즈 책 중에 아이가 관심 있어할 만한 책이 있어서 구매를 망설이고 있는 책들이 있었다.) 준이야! 근데 ‘2 주세요!’라는 책이 있는데 이거 한 번 봐볼래? (표지를 보여주면서) 이 책 어떨 것 같아?
아이 : 미리 보기 봐보자.
나 : (책을 읽어준다.)
아이 : 재밌을 것 같아. 이거 사자.
언젠가 책 미리 보기 기능을 이용해 아이랑 함께 책을 고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종종 사고 싶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 책을 미리 보기로 살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