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각오가 생겼다
16화 당신의 바다는, 지금 어떤 파도를 만나고 있나요?
운동을 잘하는 친구와 바닷가 옆을 달렸다.
친구는 앞서 가고,
난 그 뒤에서 보조를 맞췄다.
친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 속도를 배려하느라 천천히 달렸고,
언뜻 보면 빠르게 걷는 것처럼 보였다.
반환점을 돌무렵, 친구가 물었다.
"괜찮아? 더 달릴 수 있겠어?"
"헉헉, 응. 뛸 수 있어."
친구는 표정 하나 변함이 없었다.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친구의 숨소리는 조용했고,
나는 헐떡거렸다.
뒤에서 나는 내 숨소리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난 그저 속도를 맞추고 있었을 뿐인데.
달리기가 끝났다.
여유롭게 서 있는 친구.
한참을 숨고르기 하는 나.
"심술나."
"응? 왜? 내가 뭐 잘못했어?"
"넌 분명 천천히 달렸어.
뒤에서 봐도 톡톡 뛰는게 보였어.
난 그 속도를 맞췄는데, 왜 이리 벅찬거야?
넌 땀도 안나지? 운동한 것 같지도 않지?"
"아니야, 나도 땀나."
"네가 그런 실력이 될 동안 난 뭘 했을까.
넌 꾸준히 운동했을 거고, 난...
그런 널 보면 부럽고 대단해 보여.
그리고 좀 심술나."
친구는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내가 멈춰있는 동안 넌 운동했겠지.
그런 시간이 쌓였으니
지금처럼 여유있게 달리는 거겠지.
네겐 천천히 달리는 게
내겐 벅찬 속도가 된거겠지.
나도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요즘 달리기가 귀찮기도 했거든.
분발 해야겠어.
너를 넘어서진 못해도
비슷하게 따라가려면 계속 달려야겠다."
저질체력은 운동하면 안 되었다.
움직임을 최소화해 몸을 아끼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타고난 숙명이라 믿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아니었다.
귀찮고, 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스스로 아픈 몸으로 만들어왔다.
비실이로 태어났어도
건강해지고,
국가대표까지 된 사람도 있다.
정신이 든다.
항상 최악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러곤 애초부터 노력해온 사람을
괜히 부러워한다.
어쩌겠는가.
이제라도 다시 열심히 하면 될테다.
아니다,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각오가 생겼으니.
심술은, 나를 향한 질책이었다.
기필코 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라고?
가장 빠를 때다.
어설프게 해보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생긴 그때.
그게 타이밍이다.
바닷가에서의 이 달리기가
흐트러지던 마음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제 11월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
아니,
지금부터다.
발동이 걸린 지금, 이 순간부터.
그땐 그때대로 또 다른 결심이 생기겠지.
시작은 다짐이 생기는 바로 그때,
지금이다.
심술났던 경험, 있죠?
누군가를 보며 불쑥 올라온 감정.
누군가가 부러웠던 마음,
괜히 짜증 났던 감정.
그 밑에는 어쩌면,
나도 잘해보고 싶었던 간절함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한 발짝 나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