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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reestory Dec 10. 2023

잘 먹는 아이를 둔 엄마의 속사정

상담시간 (1)

저의 가상의 상담 선생님께: 

오늘 밥얘기를 해보자구요?아요.아이들 엄마, 가정주부에겐 일상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죠. 이야기가 많아요.


아이들 식성이요?하아.. 아무래도 한명씩 말씀드려야 할 것같아요. 아롱이다롱이.

먼저 첫째와 저의 이야길 드릴게요.


첫째아이는 모유수유를 2년을 했어요.

엄청 육아에 목매는 스타일 같나요?

믿으실 지 모르겠지만, 편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해외에서 독박육아를 해야하고, 취미도 많고 본인 꾸미기도 좋아하는데 육아에 온 정성을 쏟는 '엄마'저는 상상도 안갔어요.갓난 아기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육아가 흘러갈 지 무지한 상태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실은 막연 상상과 다르다는 것을,출산날에 바로 알게되었어요.분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스위스 간호사는 샤워부터 시키더니, 옆에 있어야 젖이 돈다며 퇴원때까지 아기와 한시도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일인실.남편을 포함 그 누구도 없이 갓 아길 낳은 저와 갓 세상에 나온 아기 둘뿐인 밤들. 한 생명체를 향해 그렇게 간절히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어요. 아득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던 밤들이 지나자 간호사의 말은 현실이 되어, 먹성좋은 아기가 원하는 만큼 수유를 해줄 수 있었죠.이후엔 절대 분유를 안 먹더군요.스위스에 소 많은 거 아시죠?도시에 살면서도 종종 보는 소를 보며 동변상련?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시판용 이유식도 스위스 것만 시도해봤을까요. 모유수유 끝 여유찾고자 주변 인접 유럽국가들,시댁있는 영국산까지 시판용 정말 다양히 시도해봤어요.하지만 어찌어찌 인터넷보고 만들어 낸 집표 이유식을 더 좋아하는 아기였죠.

그럼에도 휴식이 절실했던 저는, 몇입먹고 버리더라도, 시판 이유식을 틈틈히 시도하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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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돌이 좀 더 지나 한국에 갔을 때였어요.

어딘가에서 이름모를 벌레에 잔뜩 물리자,마침 곁에 있던 지인이 소아과로 데려가주었죠.TV에도 나오는 저명한 분이라더군요.의사선생님은 곧바로 처방전을 주셨어요. 금방 끝나는 구나, 한국시스템에 속으로 감탄하던 차 말씀하시네요.

"아이가 혼혈이라 그런가,성장이 좋은 듯하니 나중에 성조숙증 검사 받아보세요" 여자의 눈 휘중그래졌습니다. 간간히 글로 접하는 이슈였지만, 18개월즈음 된 아기와 성조숙중은 연결지어 생각을 못했거든요.선생님은 매우 친절하게도(?),언제고 유명대학병원 대기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대기패스권까지 안겨주셨죠.

아마 그 때 체념했던 것같아요. 편한 육아는 내 것이 아니구나라구요. 큰 키가 아니라 정상적인 성장돕기 라는 목표를 두고 식단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시간이 흘러 첫째는 유아원,유치원들을 갔어요.

언제나 또래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였죠. 유전이냐고 묻는 사람들 정말 많았어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아이아빠,저 둘다 작지 않지만 크다고 말하긴 애매한, 평균보다 살짝 큰 정도예요.

 '성조숙증'이란 단어가 엄마의 머리에 박혀있지 않았더라면, 잘 크고 있는 모습마냥 좋기만 했을 지도 몰라요.

육아초보 엄마는, 아이가 크단 얘길 들을 수록 더 집밥에 몰두했습니다. 감기약도 잘 처방해주지 않는 스위스에서, 검사나 치료는 엄두도 안나니, 제가 노력해 줄 수 있는 건 식단과 놀게 해주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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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시간이 흘러 그 아기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어요.감사히도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현재 11살, 167cm에 무용선수같이 탄탄하고 씬합니다.

편식없이 골고루 다 잘 먹고, 디저트를 정말 사랑하지만 스스로 조절을 잘 하는 아이예요.

새로운 레스토랑이나 친척집,친구네, 심지어 긴 캠프들을 보내도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은, 맞아요. 큰 복이더군요.아이와의 식사시간이 즐겁습니다.

이 아이를 생각하며 식재료를 사고 조리하고 테이블에 올려 상큼한 찬사를 받고, 오물오물 먹으며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쩜 그리 신기하고 기분좋은지 몰라요.

키 걱정은 150cm를 넘기자마자 던져버렸습니다.

 

가끔은 생각해봐요.만약  내 아이에게서 성조숙증 징조가 보여진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10년이란 절대 짧지 않은 시간동안  훨씬 더 느슨하게, 마음 편하게 식사준비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 게으른 성향에도 불구하고, 매 끼 최대한 건강히 가족을 챙겨 먹이도록 채찍질을 해주었으니 불평할 수 없습니다.아이가 앞으로 키성장이 얼마나 이루어질 지는 몰라요.3-4년 더 클수도 있고 당장 새해라도 이차성징을 맞이해 키성장이 둔화되다 멈출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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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느덧 성인 여성키 못지 않게 커서, 마음 편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요?그런가요?


분유먹고도 키큰 유럽사람 즐비하니 모유만 먹일 생각 없었으나 실패.시판이유식 먹이고팠는데 집밥 좋아하는 아이라 실패.키가 크니 아기때부터 성조숙증 조심하란 소리 들어서,건강하게, 가능하면 다양히 먹이려고 노력하게 된 엄마일 뿐입니다.저의 손이 어느샌가 늘 거칠어요.하지만 거칠어진 손이 단 한번도 제 마음을 거끌거리게 한 적은 없답니다.

출산 전 생각했던, 설렁설렁 딱 내가 원하는 만큼 육아하는 엄마가 될 상황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성향이지도 않던 저의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이의 10살 정기검진때였습니다.


과대진료의 반댓말이 뭘까요? 정말..응급환자가 아닌 바에야, 자연치유에 더 힘을 싣는 이 곳 스위스는. 병원서 치료를 안해 주니 약이 좋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는 곳이예요.

그런 곳이니, 벌써 몇년 전 한번 성조숙증 징조가 혹시 있나요? 라고 물었다가 의사분에게 혼쭐이 났었던 적이 있습니다.평상시 병원을 가지도, 질문도 거진 없던 저는 민망함에 더더욱 질문이 쏘옥 들어갔죠.

10살이 되어서야 이차성징에 관련된 상담이 이루어지더군요.사실 예전의 저라면 이 것도 이르다라고 생각했을거예요.


흥미로왔던 것은, 사춘기 무렵 이차성징의 징조발달이 제가 알고있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거였어요.제가 알고 있는 거라봐야 실제로 겪었거나 인터넷에 나와있는 흔한 정보 그 것입니다.

상담 중 여러 발달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의사분이 갸우뚱하시며 말씀하시더군요."한국은 단일 민족에 가깝고 아마 그로 인해 이차성징과정순서가 대부분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순서가 달라도 대부분 정상발달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요. 그리고 이차 성징관련 키성장에 대해서도 일침을 주셨죠.

"키가 150cm가량이 되면 이미 여아 몸 안의 기관이 대부분 성인의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언제든지 월경을 할 수 있어요. 월경 후 키성장은 역시 사람마다 다릅니다.특히 여기 유럽은 다민족이기에 변주가 많아요.유독 아시아분들이 아이들 키성장에 대해 묻습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는 한,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늘 말씀드립니다.그리고 당신의 아이는 정말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너무 의사의 말에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지금껏 살아오며 받은 진료들 중 저에게 인상적이고 영향을 미친 세 번중의 하납니다. 단순한 검진과 치료보다 더 받은 게 있어서요.

저는 아이에게 원했던 것이 평범함에 속하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발달'이였고, 제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 온 것을. 그리고 아이는 이미 걱정할 필요가 없이 잘 성장하고 있음을.아주 오랜만에 기억하게 해 주었거든요

이후, 아이에게 더 즐겁게 여러 나라의 음식과 문화,특히 한국것을 알려주려 노력하며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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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선생님, 여기까지 저와 첫째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잘하고 있는지,지나친지,부족한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 검진에 겁먹은 엄마가 노력한 것을 그래도 잘 받아들여준 아이고요.


둘째 다롱이 녀석은 저에게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해주었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시 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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