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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감상문] 잔향의 테러 (残響のテロル)

테러를 통해 세상에 본인들의 잔향(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나인과 트웰브

by 김주렁

잔향(殘響): 실내(室內)에 놓여 있는 발음체(發音體)에서 나는 소리가 그친 뒤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

출처 : 네이버 사전 (https://naver.me/5vY6Nfnx)


서론. 잘 지은 제목으로 천냥 빚을 갚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언어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단편적 예시인데, 상문의 서두에 이 속담을 인용한 것은 이 잔향의 테러라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워딩을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에 적합하게 잘 선정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테러라는 다소 급진적이고 강렬한 워딩과 잔향이라는 미미한 잔여물을 나타내는 단어는 의미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11화로 구성된 작품을 찬찬히 보고 나면 어째서 잔향의 테러라는 제목을 고르게 되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아래의 감상문을 통해 나름의 감상과 그 이유를 풀어내보고자 한다.


1. 작품에 등장하는 테러라는 소재.

본 작품의 주요한 소재인 '테러'는 작품의 주된 플레이어인 '나인'과 '트웰브'가 폭을 수단 삼아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아 자행하는 행위이다. 다만 그들의 목적은 무고한 인질의 희생이 아니다. 그들의 첫 테러에서 나인과 트웰브는 폭발을 일으킬 빌딩에서 사람들을 대피시켰고, 롯폰기 경찰서를 폭발시킬 때에는 그곳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사람이 없을 때 폭발을 기폭 시켰다. 본인들을 '스핑크스 1호 ', '스핑크스 2호' 부르며 경찰과 시민들에게 범행 장소에 대한 단서를 굳이 수수께끼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들의 목적이 무차별적 학살이 아님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딘가 낯선 방식의 테러를 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근본적인 질문에 당도하게 된다.

과연 테러리스트들(나인, 트웰브)의 목적은 무엇일까?


테러는 보통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을 무력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행위기에 객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의중과 테러를 자행할 수밖에 없던 간절함에 대해 고민하게 된. 하지만 본 작품은 관객에게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으며, 작품의 종국에 와서야 어렴풋이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이 테러를 통해 얻어내고자 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의 흔적(잔향)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었다.


나인과 트웰브, 그리고 후에 그들을 잡기 위해 투입된 파이브는 어린 시절 신진평화학원이라는 단체에 의해 자행된 아테네 프로젝트의 피험체이자 피해자였다. 그들은 전국의 고아를 대상으로 인공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발현시켜 특정 분야에 대해 유능한 인재를 만들어내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전후 패전국인 일본을 살려내고자 했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했고, 나인과 트웰브는 그곳에서 탈출, 파이브는 미국의 기관으로 넘겨졌다. 하지만 당시 사회 고위층에 의해 진행되었던 계획은 그들의 알력을 통해 세간에 공표되지 못했다.


나인과 트웰브가 테러를 일으킨 것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그들의 만행을, 본인들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회가 절대로 묵과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원자폭탄 테러)을 만들어 이를 빌미로 신진평화학원의 만행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테러라는 행위 자체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나, 본 작품 내에서의 테러는 결국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수단이었다. 작품의 마지막에 나인과 트웰브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긴다.

우리를 기억해 줘.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걸.


원자폭탄을 훔친 장소에 그들이 남긴 'VON'이라는 단어는 아이슬란드어로 희망이었다고 한다. 폭탄과 테러는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에 본인들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2. 핑크스와 시바자키 형사 사이의 수수께끼 풀이, 소재들의 상징성.

본 작품의 주된 갈등은 나인과 트웰브의 테러,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특히 시바자키 형사), 이후 사건 해결을 빌미로 나인과 트웰브에게 접근하게 되는 파이브, 그리고 그들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는 리사의 존재이다. 러가 주된 소재인 작품이지만, 액션씬과 긴박감보다는 수수께끼 풀이와 상징성에 대한 해석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이끌어나간다. 그렇기에 단순히 제목과 소재만 보고 보기 시작한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을 스핑크스라 칭하는 나인과 트웰브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본인들의 범행 예고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범행 위치나 관련 정보를 수수께끼 형태로 제시한다. 물론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올린 영상대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본 시바자키 형사와 경찰은 이후 그들의 범행 예고를 주목하게 된다.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라는 소재가 그렇게까지 새롭지는 않지만, 본 작품의 소재와 상징성이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오이디푸스의 일대기까지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인과 트웰브가 낸 수수께끼는 실제로 오이디푸스 신화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를 파악한 시바자키 형사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영상으로 인터넷에 업로드한다. 그리고 정답을 맞힌 시바자키 형사를 본 나인과 트웰브는 낙담하는 것이 아니고 되레 흡족해한다. 그들은 애당초 테러를 일으키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때문에 오이디푸스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어린 시절 버림받지만, 결국 성장하여 신탁대로 본인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수수께끼를 풀어낸 오이디푸스 앞에서 스핑크스는 모습을 감춘다. 이것이 신화 속 이야기이다.


시바자키 형사는 수사를 거듭해 나가며 결국 나인과 트웰브, 파이브를 만들어낸 신진평화학원과 마미야 슌조에게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인과 트웰브의 마지막 테러를 통해 결국에는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 이후 나인과 트웰브를 찾아간 시바자키 형사 앞에서 그들은 입을 막으려는 미군에 의해 죽게 된다. 신화의 이야기와 작품 속 인물들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시바자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신진평화학원과 마미야 슌조

스핑크스-나인, 트웰브


스핑크스의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신진평화학원을 오이디푸스가 죽이게 되는, 신화와 동일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각 인물들의 행동과 각 순간의 장면들을 잘 차용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수사극, 범죄극보다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3. 리사의 역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현신.

여기에까지 생각이 오고 나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작품의 주연인 리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의 주된 플레이어는 나인과 트웰브, 파이브, 시바자키 형사이다. 리사의 존재는 사실상 분위기 환기 역할이나 미미한 치찰음 정도의 수준을 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나인과 트웰브에게 리사는 민폐가 되는 존재였다. 유약하고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리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존재할 것이다. 불필요한 인물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관찰자로서의 역할이다. 열한 갈등에서 한 발치 물러나 사건을 관망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와 경찰이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시선으로서 리사는 일부 기능할 수 있었다. 다만 완전한 관찰자라기엔 리사는 나인과 트웰브의 발목을 계속 붙잡았다. 결국 트웰브가 경찰에 자수하게 된 것도 리사가 붙잡혔기 때문이니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작품 내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로서 리사가 투입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리사가 없었다면 나인과 트웰브의 테러는 보다 순조로웠을지도 모른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면 리사는 나인과 트웰브에게 결여된 인간성, 미완, 불완전함을 억지로라도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인과 트웰브는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어느 면에서는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어린 시절 그렇게 개조당했기 때문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고 정해진 총량을 재분배하는 것이기에 어느 한 분야의 우수성에는 다른 분야의 결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리사는 요리도 잘 못하고, 그렇다고 별달리 잘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처럼 테러를 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단순히 어머니에게 집착을 받는 삶에서의 일탈 정도만 꿈꿨을 뿐이다. 그런 리사가 갑자기 테러리스트의 공범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유능해질 리 없었다. 다만 그 미숙함과 불완전함이 인간의 본성임을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 리사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4. 마무리

스토리가 그렇게까지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작품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도 좋고 생각해 볼거리도 많아서 정주행을 세 번은 했다. 치밀한 두뇌싸움보다는 유약하고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기에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Psycho-pass, 데스노트가 두뇌싸움, 수사극의 슈퍼히어로 장르라면 잔향의 테러는 보통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제목만큼이나 기억 속에 잔향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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