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감상문] ID:INVADED
조각난 진실의 퍼즐을 조립하여 완성해 보면 뒤집힌 진실이 우리를 맞이한다
0. 모든 것은 가정(假定)에서부터. 명탐정이라는 대전제(大前提)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작품이 만들어낸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책의 배경이 중세시대의 대장장이라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대적인 배경과 인물이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라도 감안해야만 한다. 일반론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시대적 배경 등을 감안하여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게 된다.
작품의 창작자는 본인이 창조해 낸 세상을 독자(혹은 관객)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작품 관점에서 적합한지를 선택하게 된다. 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에서 모든 힌트나 단서를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면 그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관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은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창작자는 어느 정도까지 감추고,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여러 단서를 순차적으로 제시하며 작품의 종국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 가장 정석적인 방식일 것이며, 모든 힌트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관객의 몰입도를 유지시키는 것은 여간한 능력을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창작자의 의도에 의해 배치된 단서와 복선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가 작품에 몰입하고 스토리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에는 가정과 추론이 활용된다. 창작자는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한 정보를 독자에게 건네며, 독자는 이 불완전한 정보에 본인 지식수준의 최대한의 논리적 가정을 보태어 결론을 추론한다. 로맨스 작품에서는 대화 및 행동 등 여러 단서를 모아 최종적으로 어떤 커플이 이어지게 될지를 추론하며, 범죄극에서는 물증, 심증, 알리바이 등 여러 단서를 바탕으로 하여 범인을 추론한다. 하나의 추론은 확률이 낮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여러 개의 논리적 추론이 중첩되고 연결되며 그 가설은 참일 확률을 점차 높여나가게 된다.
가정과 가설은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되기에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지적 수준 및 사고관에 따라 가설의 내용이 바뀌게 된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개개인은 각기 다른 대전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던 학생과 경찰 수사관의 가설은 다를 것이고, 일반인과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의 가설은 다를 것이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및 지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쁜 행위이다."라는 대전제를 가진 사람은 폭행 현장을 보고 피의자와 피해자를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대전제가 일그러진 사람들의 경우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올바른 전제와 가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하지는 않다. 위 단락에서는 다소 극단적인 예시를 활용했지만,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또는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모두가 공명정대하고 총명하다면 경찰과 법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불충분한 정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억측을 통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이는 단순히 정보의 불충분성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사고의 왜곡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무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서운 것은 후자의 영역이고 우리는 이들을 종종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마치 거짓을 사실이고 진리인양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진실로부터 의도된 이탈을 하도록 만든다. 이는 비단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떨어져서만은 아니다. 사기꾼들은 가설과 추론을 바탕으로 한 결론 도출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이 체계를 역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과 대전제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에 풀어놓은 것은, 이 ID:INVADED(이하 ID)라는 작품이 사건에 대한 가정과 추론, 가설과 대전제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로 참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체가 취향은 아니었지만, 내용 전개와 구성 자체가 꽤나 탄탄했기에 마치 책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임에도 스토리가 너무 산으로 가지도 않았고, 추리나 수사 관련 장르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욱더 재밌게 봤던 것 같다.
1. 무의식의 세계인 이드(イド) 속의 명탐정 사카이도
ID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설명해줘야 할 내용이 많은 작품이었다. 가상세계와 무의식을 다루고 있기에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관객의 대전제에는 이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이 많이 필요한 상황은 자칫 작품의 몰입도를 해치고 작품 자체를 단순히 창작자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한 영상물 정도로 격하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본 작품은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설정에 대한 설명과 가설/추론이 8할 이상인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의 표면적 상황은 현실 세계의 연쇄살인마와 이들을 체포하는 이도(井戸)라는 기관 인물들의 고군분투기이며,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미즈하노메라는 시스템 내부의 이야기가 작품의 주된 소재이다. 와쿠무스비라는 장비는 살인 현장에 남겨진 살인마의 살의를 채취할 수 있으며, 미즈하노메는 이를 통해 살인마의 무의식 세계인 이드(イド)에 "명탐정"을 투입시키고 무의식 속에 있는 살인마에 대한 단서를 찾는 시스템이다. 이 명탐정은 이전에 살인을 저질렀던 자를 특수한 장치를 사용하여 살인마의 무의식 속으로 투입시킨 존재이며, 다른 기억은 지워진 채로 본인이 명탐정이고 카에루라는 소녀의 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암시만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기에, 명탐정의 입장에서는 매번 기억을 잃은 채로 사건 현장에 시체와 함께 눈을 뜨게 되는 것이며 살인마의 무의식에 따라 그 현장의 모습은 다르게 구성된다.
정체 모를 세상에서 눈을 뜬, 본인을 "명탐정 사카이도"라고 칭하는 한 남자의 독백을 통해 이드라는 작품은 시작하게 된다. 이 순간 등장인물인 사카이도와 작품을 보는 관객의 지식수준은 동등선상에 있다. 사카이도는 본인이 명탐정이라는 자각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눈을 떴고, 관객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하게 생긴 세상에서 눈을 뜬, 본인을 명탐정이라 칭하는 인물을 관찰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드라는 세상 속에 던져진 것은 사카이도이지만, 관객 역시 이 순간에는 사카이도와 같이 정체 모를 세상에 던져진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무의식 속에서 사카이도는 명탐정이라는 지각 아래 사건을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며, 이 과정에서 무의식 속의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도 한다. 이때 명탐정 사카이도는 현실 세계로 배출되고, 이후 새로운 명탐정 사카이도가 동일한 세계에 투입된다. 마치 게임 다시 하기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그는 아무 기억도 갖지 않은 채로 무의식 속의 사건을 해결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무의식의 세계에는 항상 죽은 소녀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카에루이며, 명탐정이 카에루를 보는 순간 본인의 이름과 역할을 인지하게 된다. 일종의 트리거인 셈이다. 명탐정은 카에루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살인마의 무의식을 조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현실 세계 이도의 직원들은 살인마의 무의식 속에서 살인마를 체포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헤멘다. 즉, 명탐정이 카에루의 죽음을 수사하는 행위 자체는 표면적인 것이며, 명탐정의 무의식 속 행동을 통해 살인마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과 명탐정에 대한 설명에서 볼 수 있듯, 이 작품의 거의 모든 것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살인마의 "살의"를 채취하는 과정 자체에서도 살의에 대한 가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무의식 속에서의 명탐정에 대한 설정과 카에루 살인사건은 살인마 체포를 위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설정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무의식에 들어가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미즈하노메 시스템 자체도 일종의 큰 가정이자 대전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무의식에 투입되는 인물을 꼭 찝어 "명탐정"이라고 설정한 것이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무의식 세상 자체가 가정이기 때문에, 명탐정이라는 자각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사카이도는 본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방향과 사고방식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명탐정이기 때문에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명탐정이기에 기본적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대전제가 사카이도가 여러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자기 암시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 말들이 무의식의 세계 속이기에 강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명탐정이라는 단어를 나쁘게 생각하면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는 운명론적, 결과론적 인물로도 볼 수 있겠으나, 무의식의 가상 세계이기에 이와 같은 운명론적 사고관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위 전체 과정이 일종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과도 유사해 보인다.
무의식 세계 속에서의 설정은 명탐정이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기에, 여기에서의 논리적 사고 과정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물론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사카이도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퍼즐을 풀어나가는 추리극이자 수사극을 보는듯한 재미도 있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추리가 함께 등장하는 "허구추리", "UN-GO"를 재밌게 봤었는데 사카이도의 추리 과정은 이런 작품들과도 결이 비슷했던 것 같다.
2. 쉬운 방향으로 생각해 버리는 오판. 미즈하노메 시스템의 무결성 상실과 이로 인한 혼돈
추리나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는 사람의 사고가 본인도 모르게 쉬운 선택지 쪽으로 기우는 경우이다. 으레 말하는 것처럼, "이건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고민 없이 넘겨버리는 생각이 사건 해결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가장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친 카이사르의 경우가 아니었을지 싶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믿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게 치부될 수 있는 일이었다. 외부 세력의 견제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에 본인이 신뢰하는 사람이 배신을 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이 앞에 있는데 방패를 뒤로 두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작품의 메인 빌런이 "베인"인 것처럼 끝까지 소개되지만 결국 흑막은 "미란다 테이트"였던 것도 이와 비슷하게 쉬운 쪽으로 사고가 편중되는 것을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의 오판은 다름 아닌 미즈하노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대전제였다. 이도 기관에서 체포한 연쇄살인마들의 무의식 속에는 "존 워커"라고 불리는 한 인물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렇기에 그들은 이 전체 사건에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존 워커에 대한 정보를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살의가 감지되지 않은 현장에서 의도적인 폭발이 일어나 경찰관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까지는 아니나 의심의 싹이 되었고, 이후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이도 팀원들의 생각은 연쇄살인마들을 만들어내고 종용하는 존 워커도 이 미즈하노메 시스템과 유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연결되었다. 그 이후, 과거 사건과 연관된 사건 수사를 위해 나리히사고의 이드에 새로운 명탐정인 혼도마치 코하루(히지리이도 미요)가 투입된 시점에 이도 기관의 실장인 모모키가 존 워커라는 혐의로 하야세우라 국장에게 체포당하게 되고 혼란은 더욱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사건의 수사를 위해 미즈하노메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가 결론적으로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사건 해결을 위해 모모키의 이드에 나리히사고 아키히토(사카이도)와 후쿠다 타모츠(아나이도)가 투입되지만, 사실은 이는 조작된 상황으로 모모키가 아닌 나리히사고의 이드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시스템의 불신에서 시작된 상황이 시스템의 조작으로 더 악화된 셈이다.
이와 같이 이야기의 근간을 뒤집어버리는 상황은 잘 활용하면 정말 극적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이도저도 아닌 설정 구멍이 많이 생겨버리기 쉬운데, ID는 이와 같은 상황을 체계적으로 잘 쌓아 올렸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흑막이 있고 내부자가 있다는 설정 자체는 이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기에 놀랍지는 않지만, 결국엔 이 뒤집힌 상황을 다시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야세우라 국장의 이도 조직이 미즈하노메를 통해 살인마를 검거한다는 내용은 정반대로 뒤집혀 시스템을 악용해 살인마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낸 하야세우라 국장이자 존 워커의 이야기로 뒤바뀌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명탐정들이 혼잡한 무의식 속 세상에서 진범인 하야세우라 국장의 범행 단서를 찾고 끝내 처분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탄탄했다. 결말 자체도 질질 끌거나 열린 결말로 처리하지 않고 명확하게 제시해 준 점이 좋았다. 이드의 정체와 결말부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풀어내보겠다.
3. 후반부와 결말부. 이드 속 이드와 아스카이 키키, 뒤틀린 하야세우라 국장(존 워커)
초반부의 세계관 설명과 중반부의 반전을 넘어, 작품의 후반부는 지금까지의 혼란한 상황을 정돈하고 결말을 맺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제 작품은 이드에 대한 설명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꼬여버린 상황에 대한 결론은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세계관 설정에 대한 설명과 결말 모두 무난한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해냈다고 생각한다. 임팩트가 매우 컸던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정갈하게 결론을 잘 낸 것 같다.
결국 화두는 이드에 갇힌 이들의 행적과 이드 자체의 정체에 대한 것이었다. 이드라는 세상 속에 속해있는 관찰자인 명탐정이 이드를 규명해 내기에는 아무래도 논리적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위해 "이드 속 이드"라는 작품적 요소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드 자체도 무의식에 대한 가정을 바탕으로 한 설정이므로 이드 속 이드라는 개념도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설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에 용이한 방향으로 구성한 의도도 일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드 속 이드로 들어가면 본인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시점으로 가게 된다는 설정도 어느 정도 사건 해결 및 설명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우선 방식을 정해놓기만 하면 설명하는 방법 자체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위 설명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히지리이도와 사카이도는 이드 속에 있는 미즈하노메 장치를 통해 이드 속 이드로 들어가게 된다. (방식 자체는 영화 "인셉션"에 등장하는 dream within a dream과 동일했다.) 이드에서 기억을 잃게 되는 명탐정의 설정과는 달리, 이드 속 이드에서 그들은 본래의 기억과 이전 이드에서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시점에 나리히사고의 아내와 딸은 아직 살인마에게 살해당하지 않았기에 그는 현실 세계에서 그의 가족을 죽인 연쇄살인마 "결투꾼"의 집에 모모키와 함께 찾아가 그를 죽이게 되고, 그에게 죽임당할뻔 했던 피해자 "아스카이 키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아스카이 키키가 결국에는 이드와 이 모든 현상의 연결고리임을 알게 된다. 아스카이 키키의 꿈에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고, 본인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사람들은 아무 죄책감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는 나아가 현실세계에서의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즈하노메 시스템 자체도 아스카이 키키를 연구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로써 이드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이드 속 이드의 아스카이 키키를 통해 완료되었다. 여기에서는 나리히사고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의미가 더 컸다고 생각한다. 이후 실제로 작품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나리히사고의 조사자료를 받아 그 세계의 후쿠다와 협력한 혼도마치이니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이 세상이 가짜임을 알고 있었지만 가족이 있는 이 세상이 진짜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살아가던 나리히사고가 혼도마치를 마주치게 되며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되는 부분이 슬펐다. 실제 사실인들 아닌 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그 세상이 나리히사고에게는 가장 중요한 세계가 아니었을지 싶다.
결국 존 워커의 정체를 알게 되고 현실 세계로 복귀한 명탐정들 앞에 나타난 것은 하야세우라 국장(존 워커)였다. 그는 그 자신만의 정의관을 피력하며 세상을 본인의 생각대로 재구축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미즈하노메 시스템을 위해 가둬두었던 아스카이 키키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 이도 조직을 포함한 쿠라 건물 내 전 인원을 아스카이 키키의 무의식 안에 가둬버리고, 본인은 본인의 이드 속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자결한다.
하야세우라 국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의 생각만을 피력하는 평면적인 인물이었다. 본인의 완고한 사상과 의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7명의 살인마를 준비하고 마지막 순간에 본인을 죽이기 위한 역할로 나리히사고까지 준비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본인의 의지대로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런 그를 작품에서는 "신 콤플렉스"라고 표현한다. 세계를 7일간 창조한 신과 같이 그는 그 자신을 숭배하였다고까지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뒤틀린 사상을 가진 존 워커는 결과론적으로 명탐정들의 활약을 통해 붙잡을 수 있었다. 최후에 그는 이드 속 이드에 갇히게 된다. 그 세상은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세상, 즉 자살 직전의 세상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했던 국장은 결국에는 그가 만들어낸 세계에 갇혀 벌을 받게 된 셈이다. 긴 호흡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13화 안에서 결말을 나름 깔끔하게 잘 낸 것 같다. 다소 정석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명탐정"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시작한 작품이기에 명쾌한 사건 해결이 그렇게까지 억지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4. 구멍 뚫는 자 후쿠다 타모츠의 작중 역할 및 구멍의 영향력. 살의와 애정이 뒤틀린 카즈타 하루카. 숫자 강박증을 가진 후쿠다 타모츠.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마 중 한 명 정도일 줄 알았던 구멍 뚫는 자 후쿠다 타모츠의 작품 내 역할은 생각보다 지대했다. 그가 만들어낸 구멍은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스토리에 영향을 주었다. 그가 직접 한 행동은 아니지만, 혼도마치가 본인의 머리에 드릴을 가져다 대며 이후 혼도마치가 명탐정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고 카즈타 하루카의 머리에 구멍을 뚫으면서 생긴 여파로 그의 살의와 애정의 감정이 뒤 바뀌어 버리기도 했다. 혼도마치를 향한 살인 충동이 키스로 나타나는 그 두 장면이 짧으면서도 임팩트가 매우 강했다. 그가 그 자신의 머리를 뚫은 행위 자체도 사건에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뚫으며 생긴 뇌의 상처로 인해 이드로 들어가면서도 기억을 잃지 않게 된 점이 사건 전개에 있어 큰 변곡점이었고, 그가 자신의 머리에 구멍을 뚫은 이유인 숫자 강박증 또한 결국엔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꾸준히 영향을 준 것이 후쿠다 타모츠였다는 사실을 작품을 다 보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5. 아스카이 키키의 절망적인 생존과 결말
작품의 마지막 순간, 아스카이 키키는 자신을 구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모모키와 마주한다. 그녀의 입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그녀는 원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고, 그것에 괴로워했다. 살아있는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살아보자고 모모키가 설득했지만 이미 그녀는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들도 꿈으로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그런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는 모모키가 가져온 총으로 끝내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모모키의 총에는 총알이 없었다. 처음부터 모모키는 경찰관의 입장으로서 그녀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카이 키키에게는 살아있는 것이 너무도 절망적이고 고통이었다. 죽음으로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스카이를 모모키는 붙잡는다. 당장은 구할 수 없지만 방법을 찾아보겠노라고 말하는 모모키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으로 희망적이지만, 아스카이 키키의 입장에서 들어본 모모키의 말은 죽으라는 말보다 더욱 절망적인 말이었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가 그렇게나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상황 자체가 역설적이면서도 비극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살아남는 비극을 택하고 미즈하노메의 장치 안으로 다시 들어가 언젠가 누군가가 구해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6. 감상문을 마무리하며
자칫 뻔하거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되기 쉬운 소재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잘 쌓아 올린 작품이었다.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혼도마치의 키스신이고,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나리히사고가 이드 속 이드에 살고 있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를 고하는 장면이었다. 그 외에는 복선 회수도 차근차근 잘 해냈고 대사도 한줄한줄 많은 고민을 하며 써 내려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작화 자체도 안정적으로는 잘 뽑아낸 것 같다.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