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가는 대로 소설 써보기_차를 마시다가
부제 : 녹음의 비명
어스름이 깔려온 그날의 산 중턱은 심연과도 같은 남색을 띠고 있었다. 무거운 공기, 차가운 마음을 뒤로한 우리의 몸에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흘러넘칠듯한 생의 기운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와 수용에는 좀체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간신히 이해의 강을 건넌 우리의 마음은 그곳이 길임을 알면서도 수용의 강은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흩뿌려져 어질러진 마음을 뒤로하고 공연히 주변을 둘러본다. 한쪽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초목이 생의 그림자를 세상에 남기기라도 하려는 듯이 가만히 서있었고, 그 뒤로는 수십 년, 수백 년을 살았을지도 모를 거목이 마치 세상의 시초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상에 유용(有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가치와 책무를 소중히 하고 헛되이 하지 않아야만 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며 일언반구도 가치 있는 생을 요청했던 적이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생을 부여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가치인지 책무인지도 모를 존재를 등에 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마디 볼멘소리라도 해볼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닌가? 작금의 나는 이런 뒤죽박죽인 심사(心思)를 헤아리며 다가올 운명을 한 발치만큼 밀어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은 우리를 더욱 두렵게 했다. 생을 박탈당한 우리의 잎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바싹 마르게 될 것이고, 우리 중 또 일부는 균에 몸을 뜯기며 썩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박제당한 우리는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를 통 안에 갇히게 될 것이다. 우리 생의 순환은 그곳에서 한 차례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격리된 우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지도 알 수 없겠지만 어느 날엔가는 문득 다시금 빛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금 세상과 마주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팔팔 끓는 물이다. 우리의 여생이 박제되어 있는 잎사귀에 그들은 팔팔 끓는 물을 부을 것이고, 우리는 녹아내리며 얼마 남지 않았던 생을 토해낼 것이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우리의 생은 다른 생을 위해 전달될 것이고, 그제야 우리의 여정은 마무리될 터였다. 땅에서 나와 자란 우리는 다시 땅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녹여낸 생을 빼앗긴 후에야 어딘가로 버려질 운명인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에게 이어진 생은 끊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어쩔 도리가 없다. 삶의 종국까지 괴로워하며 생을 마감할 것인지, 유용이라는 미명 하에 숭고함을 마음에 품고 생이 바스러질 것인지의 문제이다. 생이 한껏 차오른 그때에 생이 박탈당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너무나 잔혹한 일이다. 새벽녘의 찬 바람이 우리를 스치며 생의 잔향이 산허리를 따라 은은하게 퍼진다.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