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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깊이

-늪-

by 희수 Feb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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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허리를 펴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1시간, 2시간.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잠을 안 자도 졸리지 않았다. 난 깊은 수렁에 빠져 버렸다.




증상 

자연분만은 충격이었다. 내가 그냥 한 마리의 짐승임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물론 내 주관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것일 뿐, 숭고하고 아름다운 의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첫 아이는 이와 같은 고통과 충격 속에 태어났으나 그것과 별개로 무척 사랑스러웠다.

' 내가 태어난 이유가 바로 너로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보통의 산모처럼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매일 우는 아기를 업고 달래는 육아가 시작됐다. 밤낮이 바뀐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묘한 내 감정에 있었다. 스산한 기분, 뭐라 표현 할길 없는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 왔다. 산후 우울증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우울증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전이라서 산모의 통과의례라 생각하며 지나쳤다.


백일쯤 되자 아이는 낮과 밤을 알게 됐고, 나 역시 평상시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익숙해지고 커가는 아이가 삶의 활력이 돼 갈 때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 또다시 자연분만의 고통과 충격을 겪고 싶지 않아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출산이 한결 편했기 때문인지 첫째 때와는 달리 산후 우울증이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떼쟁이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 숨이 막혀오는 공포를 느꼈고,  자다가 숨을 쉴 수 없어 깨는 날도 있었다. 공황발작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자주 체하는 증상도 함께 나타나서 건강검진도 받았으나 장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국 소화가 안 돼 다시 찾은 내과에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이처럼 우울증으로 인해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신과

둘째 아이는 16개월이 돼서야 걸었던, 모든 것이 늦되는 아이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랬던 아이가 발화가 늦어지고 지나치게 주위가 산만해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아이의 장애를 의심하게 됐다. 그때의  불안과 공포는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 둘을 낳으며 빠지지 않던 살이 단 며칠 만에 쑤욱 빠져나갔다. 내 생애 가장 날씬했던 시기였다. 역시 신은 모든 걸 다 가져가진 않는다. 어린 시절 그토록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놀림받았던 내가 30대 중반에 외모에 대한 극찬을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내 외모에 대한 찬사는 큰 아이가 7살, 둘째 아이가 5살 때 들었다.

' 야! 니들은 좋겠다. 엄마가 예뻐서.' 처음 보는 어느 아주머니의 과한 칭찬이었다.


연속으로 5일을 못 자고 결국 정신과를 찾아갔다. 생전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살려달라 말했다.

" 제가 우울증인 것 같은데, 죽고 싶지는 않아요. 애들도 너무 어려요."

손톱이 유난히 깨끗하고 웃는 모습이 독특했던 의사는 어린 시절과 현재 힘든 점에 대해 질문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이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엄마와의 애착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했다. 결혼 전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난 엄마의 호위무사로 친정일에 동분서주하며 비교적 잘 지냈기에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어릴 때 막 키운 자식이 커서 효도한다고, 같은 맥락이라고 봐도 돼요."

즉 엄마의 일이나 친정일에 나서는 것은 어린 시절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했다.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친정일에 신경 쓰지 말고 시집과도 거리를 두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이니 지금 현재 닥문제에 집중하고 하나씩 해결해 가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이 진행됐고 약도 함께 복용했다. 내 앞의 불운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나아갈 방향을 찾은 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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