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는 알았을까, 엄마가 결국 너의 짝꿍이 된다는 것을.
나의 엄마는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다. 엄마와 엄마의 부모님, 형제들에게 그 강아지는 가족이었다. 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사건이 일어났다.
강아지가 대문을 잠시 열어둔 사이 집을 나갔고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해 뒤따라간 가족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강아지는 대문을 나가자마자 달려온 차에 치였다.
강아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엄마와 엄마의 가족들은 또 다른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강아지라는 존재의 한 생명이 엄마에게는 누구보다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집에 또 다른 강아지가 왔다. 엄마 인생의 두 번째 강아지. 작은 강아지의 생명의 무게가 엄마에게는 참 무겁게 느껴졌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이 또다시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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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똘이가 아빠의 어깨에 매달려 우리 집에 온 날 저녁, 똘이는 울타리에 가둬졌다. 똘이는 힘없이 베란다에 설치된 울타리로 들어갔다. 똘이는 힘차게 아빠를 불러댔다. 가족들이 자는 동안에도 똘이는 계속해서 아빠를 불러댔다. 엄마는 내심 그런 똘이의 울음소리가 가여웠다. 강아지가 싫은 게 아니다. 그저 저 강아지가 먼지를 거실에 흩뿌리는 것과 더불어 다시 다가올 강아지와의 이별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창고에는 엄마가 똘이가 오면 주려고 미리 사둔 강아지 사료가 있었다.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는 똘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미 똘이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는 슬그머니 베란다에 나가 똘이의 울타리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똘이의 울타리 생활은 단 몇 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강아지는 감정에 예민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누가 자신을 불편해하는지 좋아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똘이 또한 그러했다.
똘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식구들 모두가 학교와 회사로 나간 사이 엄마와 단 둘이 남겨진 똘이. 그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눈빛 대신에 엄마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꼈다.
와중에 엄마는 착실히 밥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똘이는 언제 눈치 봤냐는 듯이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하루 이틀이 되자 밥을 먹는 똘이의 작은 입이, 밥 냄새를 맡고 부엌으로 달려오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엄마는 참 귀여웠다. 엄마의 절친한 친구인 아줌마 A가 집에 자주 놀러 왔다. 그 아줌마는 엄마와 다르게 똘이를 예뻐했다. 높은 목소리로 똘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런 아줌마를 똘이는 참 좋아했다.
퇴근시간 때가 되면 똘이는 늘 현관문 앞으로 나갔다. 똘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법한 몸짓이었다.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현관문 앞에 나가 낑낑거리며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가 똘이에게는 힐링이자 기댈 구석이었다. 그런 똘이를 보는 엄마의 눈빛은 점점 걱정에서 동정으로, 동정에서 애정으로 변해갔다. 엄마가 책임져야 할 작고 짧은 생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엄마는 천천히 다가가 똘이를 쓰다듬었다. 똘이와 엄마가 눈 맞춤을 몇 번 한 뒤에 똘이도 마음을 열었다. 둘 사이에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 온 지 이틀 째 되는 날, 똘이를 데리고 가족들 전체가 동물병원에 갔다. 건강상태가 어떤지 체크도 할 겸 나이를 알고 싶었기도 했다. 동물병원에서 열심히 목욕을 하고 털을 깎았다. 털이 벗겨지고 생각보다 오동통한 똘이의 몸이 드러났다. 살이 접히는 곳을 찾아 열심히 눌러보는 나와 동생. 똘이만의 몸 냄새가 났다. 귀여운 몸 냄새. 귀여운 똘이 냄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이 벌려지고 눈꺼풀이 들리고 의사 선생님께 이리저리 들리며 당황스러워하는 똘이. 똘이는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2004년 10월 생이겠구나.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똘이의 생일을 10월 4일이라고 정해주었다. 똘이가 헥헥대며 밝게 웃었다. 1004. 천사. 똘이는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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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똘이는 더 이상 걷지 못한다. 몇 발자국 걷다가도 픽픽 쓰러진다. 뒷다리를 쓰지 못해 절뚝거린다. 늙어서 오는 증상들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기력이 없다. 하지만 똘이는 걷고 싶다. 돌아다니고 싶다. 넘어져도 걷고 싶고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싶다. 자존감 강한 말티즈인 박똘이는 그럴 때마다 성질이 나는지 엄마를 찾았다. 그런 똘이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엄마는 매일 똘이를 안고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산책을 할 수 없는 늙은 강아지 똘이를 안고 이곳저곳 봄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다녔다. 똘이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가만히 안겨 냄새를 맡고 눈을 감으며 바람을 느꼈다. 바닥에 두면 낑낑 울다가도 엄마 품에만 안기면 조용해졌다. 엄마의 티셔츠에서는 항상 똘이 냄새가 났다.
똘이의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옆에는 항상 똘이가 있었다. 아빠 옆에만 있으려고 하던 똘이는 나이가 들 수록 엄마에게 의존했다. 그리고 몸이 많이 안 좋던 때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엄마는 밥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늙은 똘이를 위해 사료를 불려 갈아주기도 하였고 그마저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쌀을 열심히 불리고 끓여 미음을 만들었다. 그마저도 삼키지 못하게 된 때에는 주사기에 넣어 똘이가 삼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엄마는 말했다. 느껴진다고. 똘이가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먹지 못해서 속상해한다고. 엄마의 말은 맞았다. 똘이는 냄새를 맡으면 반응했다. 어렸을 때처럼 고개를 휙 하고 들지 않아도 살며시, 눈을 움직였다.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씹지 못해도 어떻게든 입에 넣으려 힘들게 입을 벌렸다. 엄마는 그런 똘이에게 구세주였고 간호사였고 엄마였고 짝꿍이었다.
똘이는 알았을까.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똘이는 알았을까.
똘이가 엄마의 짝꿍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