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치스러운글 May 27. 2022

똘이와의 첫 만남

어깨 위의 회색 걸레

그날은 이른 시간부터 시끌시끌했다. 아빠와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가 있었다. 엄마는 무언가를 극히 거부하는 듯했다. 그리곤 엄마는 전화기를 우리 자매에게 넘겨주었다. 아빠가 물었다.

"너희 강아지 키우고 싶지?"

"응!! 응!! 진짜 키우고 싶어!"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넘겨받고는 다시 아빠에게 높은 소리로 극히 거부하는 듯한 말을 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빠가 강아지를 데리고 오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빠가 거래처 회사에 갔을 때였다. 아빠는 그 지역에서 며칠을 상주하며 지내고 있었다. 공장이었던 그곳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며칠 아니 몇 달을 못 씻은 아이처럼 있는 모습. 왜 이렇게 있느냐는 모습에 거래처 직원은 씻길 수가 없다는 말 뿐이었다. 많은 공장 앞에 강아지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강아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강아지는 사람을 참 많이 따랐다.


그중에서도 강아지는 아빠를 많이 따랐다. 항상 있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아빠를 졸졸 따라다녔다. 오래 보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 본 아빠를 주인처럼 대했다. 마치 나를 데려가라는 듯, 내 가족이 되어주라는 듯 아빠를 선택했다. 먼지가 쌓이고 씻지 못해 더럽고 길게 자란 털들 사이로 초롱초롱한 검은색 눈동자가 보였다. 길게 자란 꼬리를 흔들며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모양새가 꽤나 귀여웠다.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다가도 대체로 얌전히 옆에 앉아 기다리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가끔 축축한 코를 들이밀며 관심을 요구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강아지는 또랑또랑한 검은 눈과 촉촉한 코로 아빠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빠가 거래처 직원들과 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강아지를 두고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강아지를 일단 차에  태우고 식당에 갔다. 식당에는 강아지가 들어올 수 없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차에 두고 식당에 들어갔다. 작은 강아지가 차에서 점점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차 안에서 강아지는 검은색 눈동자를 희미하게 굴리며 마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이 친구를 데려와야겠다 생각했다.


거래처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강아지의 주인은 없었다. 복잡한 사정으로 오 갈 곳이 없어져 이곳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아빠는 강아지의 이름을 물어봤다. 똘이. 똘이였다. 




우리는 발을 동동거리며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귀여운 강아지 일지, 얼마나 이쁠지 끝없는 상상을 했다. 강아지를 기르게 되면 어떤 걸 해줄지 어떻게 예뻐해 줄지. 머릿속이 기분 좋게 빙글거렸다. 기다리던 아빠가 등장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그때 아빠의 어깨에 무언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웬 회색 걸레 같은 것이 좌우로 씰룩 쌜룩 움직이고 있었다. 알았다! 강아지구나! 똘이의 첫인상은 귀여움도, 예쁨도 아닌 놀라움이었다.


걸레 같은 것을 아빠가 바닥에 툭 내려놓으니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거실을 활보하였다. 누가 봐도 매우 더러운 상태였다. 출장 지역에서 서울까지 꽤 먼 거리를 얌전히 조수석에 앉아 왔다고 했다. 벌써 강아지의 모습을 자랑하는 아빠였다. 강아지의 모양새에 가장 곤욕스러워했던 건 깔끔을 떠는 엄마였다. 강아지를 보자마자 미리 준비해둔 울타리를 베란다에 설치하고 그 안에 강아지를 가둬두었다. 하루에 3번씩 집안 청소를 하던 엄마에게 걸레와 같은 먼지 덩어리를 달고 온 강아지는 불청객이었다.


이름을 새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그냥 불리던 대로 불러주기로 했다. 똘이. 우리 성을 붙여서 박똘이라고 정했다. 똘이는 새로운 공간에 꽤 쉽게 적응하는 듯 보였다. 작고 보들보들한 강아지. 먼지 덩어리지만 행복한 강아지. 더러워진 회색  털들 사이로 보이는 조그마한 발톱과 발바닥이 앙증맞은 강아지. 길게 자란 꼬리를 흔들며 거실 바닥을 쓸고 다닐 때 엄마가 소리를 질러도 아빠에게 아무렇지 않게 달려가는 강아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이 날 일기를 썼고 그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강아지 발바닥이 참 귀엽다고. 발바닥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똘이가 내 동생이 되었다고.


똘이가 우리 집에 왔다.











*해당 글은 똘이의 이야기를 주제로 계속 쓰여질 예정입니다. 첫 글부터 엄청난 관심에 똘이도 참 좋아할 것 같아요. 반려견과 그의 일생을 끝까지 함께 해야하는 이유를 제 글로부터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