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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Jul 13. 2019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들

약 일주일 정도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먹는 것조차도 하기 싫어지던 이 시기의 시작이.

티비를 틀어놓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 보려고 했지만 채널을 옮기지는 않는다.

일하다가도 가끔씩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본다. 머리 쓰는 것조차 하기 싫어졌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한 '완벽주의자에 열심히 살지 않으면 병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달려왔고, 무언가 하지 않는 삶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에는 그 젊음에서 나오는 특유의 객기가 이유 없는 자신감을 실어주었고 그 자신감만을 믿고 나는 지금, 20대 후반까지 달려왔다. 그 당시의 나는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걱정거리는 금방 사라졌다. 걱정할 거 없이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연애도 같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고 그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적극적이었다. 나는 항상 사랑받았고 그만큼 열정적으로 나도 사랑했다. 잃을 것도 없었고 아까운 것도 없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극도로 무기력해졌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을 맞이하기 시작했고, 오래된 연애가 끝나고 난 뒤 새로 시작하는 관계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무사히 ux디자이너가 되었지만, 최근 들어 계속된 야근에 지쳐버렸다. 바라보고 있던 해외여행은 같이 가는 언니의 취소로 수포가 되어버렸다. 돈은 모아도모아도 티끌이고 술은 마셔도 마셔도 고프다. 자신감이 가득했던 나의 일상에 이제 '도전'이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나는 지금 내 삶에 어떤 걸 갈망하고 있을까.

도전하는 삶 속에서 정복감과 만족감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이제는 어떤 도전이 남아있을까.

커리어의 업그레이드? 새로운 연애의 시작? 운동에서의 목표 달성?

사실 지금은 아무것도 이루고 싶지 않다.


이런 시기가 계속되다 보니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부지런함은 오랫동안 지속해야 습관이 되는데, 무기력함은 왜 하루만 있어도 편해지는 걸까.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큰일이다.

그 날로 나는 금요일 연차를 썼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아무것도 안 해보자.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한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침운동을 하러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오늘은 스킵. 느지막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얼마 전에 구입한 어쿠스틱 기타를 잡는다. 가만히 앉아서 기타를 치다 보니 몸이 근질거린다. 슬슬 씻고 외출 준비를 한다. 기분전환으로 화장을 열심히 하고 나가서 괜히 다 떨어진 화장품을 구매하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신다. 할 일 없이 커피를 마시는데 금요일 오후에 일이 하기 싫어 사무실에서 나온 직장인들이 보인다. 괜히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 예전에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했던 치킨을 시켜먹는다. 영화를 튼다. 잔잔한 줄 알았던 타임 킬링용 홍콩영화에 생각지 못한 감동을 받고 울어버린다.


그냥 울어버리고 싶었던 걸까? 무기력했던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회사에서도, 불 꺼진 방안에서도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울지 못했다. 내가 왜 우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핑계로 울어버린 순간, 참았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나의 인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답답해서 무기력하다.


한바탕 울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풀린다. 개운해지면서 생각이 정리된다. 놓지 못했던 연애에 대한 미련도, 커리어에 대한 갈망과 고민도, 하고 싶었던 것들이 차근차근 자리를 찾는다. 활동적이게 움직이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에도 계속되는 시간의 흐름에도 일시정지 버튼이 필요하다.

이제 다가올 다음 나의 도전을 위해서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했더니, 아무것이나 하고 싶어 졌다.




무기력한 나를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이 마음을 인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앞으로 내가 도전해야 할 일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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