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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1

톰 웨이츠 이야기

by 김주영

어느 날, 바람이 세차게 부는 해안가의 작은 마을.


시시껄렁한 서커스단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텐트의 천장은 바람에 흔들리고, 희미한 노란색 조명은 깜빡깜빡거린다.

못생긴 키 큰 광대가 무대 위로 초대되었다.
그는 털모자를 쓰고, 너덜한 코트를 입은 남자, 톰 웨이츠였다.

코가 반쯤 벗겨진 분장을 하고, 한 짝 찢어진 장화를 끌며 무대로 오른 그는 웃기지도 않고, 곡예도 못 했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사회자가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타인에게 관심이 많아?

당신 노래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엾기 짝이 없는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이 만만한거야. 왜 그런 거야?'


광대는 잠시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낡은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왜냐면…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잖아? 그래서 그들이 가슴 속에 깊이 숨겨 둔 노래들을 내가 대신 잠깐 꺼내본 거야! 말하자면 이런 거지!'


메마른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자갈이 구르는 것과 같은 탁한 소리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양털깎이었지.

그가 죽었다고 신문엔 나오지 않았고, 그가 왜 양을 훔쳤는지도 아무도 묻지 않았어.

하지만 난 알아. 그는 굶주렸고, 뭔가를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거야.

그게 자기 자신이었는지, 자존심이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첫 번째 곡은 호주 사람들이 국가처럼 여기는 "떠도는 마틸다"입니다. 일자리를 상실한 떠돌이 노동자 SwagMan이 양을 훔쳐 먹은 것으로 지탄받고 사냥개들에게 쫓기다가 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랍니다.'

사회자가 끼어 들었다.

광대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 노래는 1894년 호주 개척시대, 퀸즐랜드의 양털깎이 파업 사건에서 유래된 거야. 당시 부유한 농장주들과 정부는 파업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군대까지 동원되었어. 그런 사회적 긴장 속에서 돈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떠돌이가 되었지. Matilda는 떠돌이들이 등에 메는 봇짐을, Waltzing은 걷는 것을 의미해.

보따리 하나 메고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

등에 멘 삶의 무게는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언제고 덜어질 수 있을까?'

'떠도는 마틸다, 떠도는 마틸다'라는 후렴구와 거친 피아노가 임종 직전의 숨소리처럼 헐떡거렸다.


광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삐걱대는 관중석엔 늙은 부부 하나, 취객 둘, 그리고 말 못하는 소녀가 무대를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사회자가 큰 몸짓과 함께 '박수 쳐'라고 소리치자 조용히 박수를 쳤다.


피아노 앞에 앉은 광대가 두 번째 곡을 시작하기 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진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관한 거야.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먼 길을 돌아왔지만…한눈에 알아봤지.'


피아노는 느리게 마치 아득히 먼 술집 뒷골목에서 들려오는 듯한 멜로디의 '올드랭 사인'을 울렸고, 저 밑에서 힘겹게 끌어올린 듯한 소리의 노래가 흘렀다.


'그는 말했다.

옛날에 친구 하나 있었지.
불량배랑 싸우다 이빨 몇 개 날려버린,
밤마다 담배 불빛 아래서 시 쓰던 놈.
인생이랑은 질질 끌며 싸우던 놈이었어.

난 그 친구를 20년 만에 만났어.
낡은 바에 들어섰을 때,
그가 먼저 내 이름을 부르더라고.

"야, 이 자식아… 너 아직 살아 있었냐?”

그 말에 웃음이 나왔어.
서로 변했지만, 안 변한 것도 있었지.
눈 밑의 그림자, 손톱 밑의 기름때 같은 것들 말이야.

우린 그날 밤,
세상에서 가장 값싼 위스키를 마시며
서로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취했어.

“반갑다. 우리… 아직도 살아있네.”

널 봐서 좋아, 그게 전부였어.

누군가 내 노래를 들어줄 때까지
서로가 살아남았다는 걸 확인하는 것.'


웨이츠는 살짝 웃으며 피아노를 다시 두드리며 이어서 노래했다.


'그날 밤 이후로, 난 다시는 그 친구를 못 봤어.

아마 이젠 세상에 없겠지.

하지만 말이야,

어떤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 돼.

단 한 번의 재회가,

평생을 버티게 해주거든.'



(Part2 완결로 이어집니다)


이 글에서 소개된 곡을 포함한 톰 웨이츠의 주요 곡을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전방위 예술가, 톰 웨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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