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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보다 신동엽의 카스텔라 이야기

by 미스블루

머릿속이 생각으로 터져나가려고 할 때, 진통제를 먹듯이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유튜브의 쇼츠를 틀어 휙휙 본다.

유튜브를 끊어야겠다는 다짐의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말이다.

그날도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으로부터 탈출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쇼츠를 보고 있었다.

개그맨 겸 MC인 신동엽이 술에 조금 취해 벌개인 얼굴로 담담히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스트레스로 한창 달아오른 나의 숨을 고르며 이야기를 들었다.


신동엽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도 아버지의 외벌이로는 그리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동네 친구들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대며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어린 신동엽을 자극했다고 한다.

어머니한테 나도 유치원을 보내달라며 떼를 썼더니 어머니는 유치원에 보내주신다는 말대신 카스텔라와 우유를 사주겠다고 하셨다고 하니..

어린 신동엽은 그때 알아차렸다고 한다.

아버지 월급이 나왔을 때 한 달에 딱 한 번만 먹을 수 있었던 카스텔라를 갑자기 사주신다는 어머니의 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난 유치원에 갈 수 없는 거구나.. 하고 생각한 어린 신동엽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카스텔라와 우유를 먹었다고 한다.

만약 그때 자신이 어머니께 카스텔라 사주시는 거 싫다고..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더라면 아마 자신은 카스텔라도 못 먹고 유치원에도 못 갔을 것이라고..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그때 카스텔라를 먹은 일이었다고.. 신동엽은 말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지 못해, 아니면 하차를 당해 우울증에 빠져 있는 후배들에게 '카스텔라 이야기'를 해주며 우울해하며 주저앉지 말고 차선책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다독여 주라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신동엽.

차선책을 용기 있게 받아들인 자신을 내가 가장 먼저 자랑스러워해 주라는 그의 이야기.


차선책...

차선책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너무나 원하는 그 일을 하지 못하고, 그 주변의 일로, 아니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더 최악의 경우엔 아예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만족을 해야 할 때 우리의 마음은 무너진다.

다리는 휘청거리고 시야는 흐려지며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움츠려든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목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신동엽의 '카스텔라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차선책을 받아들이는 자신을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잘했어 너무 잘했어..' 라며 내가 나를 일 번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그 따뜻한 나의 팔 안에서 먼저 한번 실컷 울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 주눅 들지 않고 또다시 해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호아킴의 '마시멜로 이야기'는 순간의 만족을 참으며 나를 더 강하게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참으면 나중엔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더 큰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서점에 쌓여있는 유명인들이 쓴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간혹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다그치는 자기 계발 콘텐츠들 사이에서 더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더 하라고.. 더 해보라고.. 더 일찍 일어나고 나를 몰아 더 많은 자격증을 가지라고.. 직업은 하나 가지고는 안된다고.. 차선책은 절대 안 된다고..


그날 신동엽은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의 길을 걸어가며 외롭고 슬픈 우리들에게 괜찮다며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

세게 부는 바람으로 재킷을 더 단단히 여미던 사람이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로 재킷을 벗은 이야기처럼 '마시멜로 이야기' 보다 신동엽의 '카스텔라 이야기'가 지친 우리를 더 힘차게 일어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그가 큰소리로 말해주니 우리는 비로소 숨을 쉬며 배시시 웃을 수 있었다.

오늘도 또 그렇게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그림은 <핀터레스트>에서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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