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 민 거예요?"
작년 초겨울.
오랜만에 휴가를 낸 친구와 전주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정말 좋은 여행이었지만 이상하게 참 피곤했다. 예민했다.
(며칠 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여행에서 우린 코로나에 걸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사방에 흩어지는 사람들이 가득한 용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지하철 안은 승객으로 꽉 차있었다.
'그렇지... 초저녁 9호선에서 앉아가길 바란 내가 순진했지.' 싶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 젊은 여자가 날 팔꿈치로 밀어냈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내가 민망했다. 좁게 가기 싫으니 타지 말라는 명확한 신호였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냥 밀려나 다시 밖으로 튕겨 나와주던가, 꾹 참고 모른 척 빈자리를 찾았을 거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무척 피곤해서였는지 나도 처음 보는 내 안의 자아가 나왔다.
"지금 저 민 거예요? 타지 못하게? 지금 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아니... 제가 이렇게 서서 가고 있는데 여기로 들어오시면..."
"민 거 맞네요? 밀지 않았다면 '저 안 밀었는데요'라고 답하셨겠죠?"
그 순간의 내 논리는 손석희 저리 가라였다. 매우 날카롭게 핵심을 찔렀으며, 논리적이었고, 흥분 따윈 집어치운 조곤조곤의 끝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말없이 내 눈치를 봤다.
순간 난 깨달았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게 익숙했던 내가, 화라는 감정을 억눌러 어색함을 피하던 내가 남들에게 내 눈치를 보게 했다니!
아주 낯설고 새로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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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상담을 위해 만난 선생님에게 이 일화를 이야기했다.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화를 내 봤어요. 그런데 뭔가 후련했어요."
선생님은 물개박수를 쳐주었다.
화를 내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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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난 버스에서 발 뒤꿈치를 밟혀 운동화가 벗겨졌다.
그런데 그저 운동화 뒷춤의 먼지를 툭툭 털고 주섬주섬 다시 신었다. 사과를 구할 생각도 못했다.
물론 검은 눈동자가 관자놀이로 돌아갈 만큼 혼자 있는 힘껏 그녀(ㄴ)의 새침한 뒤통수를 한번 째려보긴 했다.
사람 쉽게 안 바뀐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음엔 공공장소에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용기를 내어 외쳐볼 거다.
"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