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절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관계의 단절과 회복에 대한 유명한 실험으로 에드 트로닉(Ed Tronick)의 정지 얼굴(Still-face) 실험이 있다. 이 실험 이후 약 50년 동안 양육자/부모와 유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실험에서 양육자는 아이와 마주 앉아 2분간 평소와 같이 유쾌한(playful) 상호작용을 하도록 지시받는다. 이때 양육자는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한다. 이러한 시각적 신호를 감지한 아이는 미주 신경(vagal nerve)을 통해 ‘안전하게 사회적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생리적 신호를 받게 된다. 그 후, 양육자는 실험 설계에 따라 2분간 말을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다. 물리적인 존재감은 유지되지만, 아이의 행동, 표정, 감정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일종의 관계 단절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이들은 초반에 양육자의 반응을 다시 이끌어내고 기존 상호 관계 패턴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참여 신호(engagement cue)를 보낸다. 예를 들어, 양육자의 눈을 더 열심히 쳐다보고, 웃고,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하며, 꺄르륵 소리를 내면서 관심을 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신의 노력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러면서 회피 반응(disengagement cue)을 보이게 된다.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화답하지 않는 무표정한 양육자를 위해한(harmful) 자극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불편감을 주는 자극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손가락을 물거나 크게 울기도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어려서부터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전달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정신분석가들이 그 이전까지 믿고 있었던 것과 달리, 영유아들은 공동(void)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자신의 얼굴 표정, 몸짓, 발성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이에 반응하는 양육자와 서로 의도와 감정을 리듬 있는 패턴으로 교환하면서 관계에서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meaning-making process).
실험은 관계의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과정이 비선형적인(non-linear)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는 일관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단절과 회복을 통해 필연적으로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지 얼굴이 나타났을 때 아이는 양육자와의 관계를 이전에 부여했던 의미(맥락)로 풀어낼 수가 없게 된다. 아이는 이전에 양육자와의 재연결에 성공했던 모든 행동을 반복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관계에 새로운 의미가 시작된 것이다. 아이는 이전의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통용되던 의미와 규칙이 허물어졌음을 인지하고 자기 조절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아이는 일시적으로 관계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과거 관계가 부여했던 의미를 계속 유지해도 되는지 아니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렇기에 아이는 2분이 지나고 양육자가 정상적으로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재개해도 잠시 머뭇거린다. 믿어왔던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의 의미가 앞선 2분 동안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신뢰에 기반한 상호과정의 규칙들이 깨졌던 이후, 이 사람에게 다시 이전처럼 대해도 되는 걸까?'
'대체 2분간 우리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걸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나?'
하지만 결국 아이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양육자와 기존 상호작용 패턴을 재개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는 회복되어 간다.
관계 단절과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정지 얼굴 실험은 양육자와 아이 사이에서 상호작용의 불일치(mismatch 혹은 dyssynchrony)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일치란 아이와 양육자가 서로 다른 감정/각성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트로닉 박사는 추가 실험을 통해 이러한 불일치가 전체 양육자-아이의 상호관계 시간의 70% 이상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능동적인 상호작용 중이라도 절반의 이상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느끼며 동상이몽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일치가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는지이다. 이러한 단절의 성공적인 회복은 관계를 더 탄탄하게 해 주고 유아에게 회복력과 안전감을 키워줄 수 있다. 반대로 관계의 단절이 회복 없이 빈번하게 반복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 조절 능력 및 신뢰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CHA병원에서 만난 정신분석가 알렉산드라 해리슨(Alexandra M. Harrison) 교수님은 치료자-환아 관계에서의 단절과 회복을 비디오를 분석을 통해 가르치는 지도자이자 연구자이다. 은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운 듯, 교수님은 칼단발 백발 머리를 휘날리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후학을 위해 강의하셨다. 보스턴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Supporting Child Caregivers(SCC)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열정 가득한 나의 멘토이시다.
전임의 1년 차 때, 해리슨 교수님과 수요일 아침마다 만나서 1:1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치료했던 놀이치료 녹화 영상들을 많이 보여주셨다. 교수님 만큼 자신의 정신(놀이) 치료 과정을 가감 없이 녹화본을 통해 보여준 지도 전문의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영상들 중 단절과 회복의 과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5세 남아 토니 (가명)와의 치료 기록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토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의심되는 아이였다. 영상은 토니와 해리슨 교수님의 첫 놀이 치료 회기 기록이었다. 토니는 나무 블록을 가지고 건물을 지으며 혼자 놀고 있었다. 토니에게 천천히 접근하는 치료자에게 토니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치료자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며 토니의 놀이에 대해 언급하자, 아이는 등을 돌리고 슬금슬금 치료자와 거리를 벌렸다. 아이와의 거리를 좁혀보려는 노력이, 그리고 눈에 보이는 놀이 행위를 언어화하는 치료 기법이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토니는 치료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노력을 유해하다고 인지해 회피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낸 것이었다. 관계는 이렇게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다.
이런 토니의 반응에 해리슨 교수님은 턱에 손등을 잠시 가져갔고, 발을 아이와 반대쪽 바닥에 딛고 몸을 뒤로 약간 젖혔다. 관계의 단절을 감지한 치료자의 몸이 회피 신호를 무의식 중에 보내온 것이다. 그렇게 짧게나마 치료자는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자기 조절을 통해 평정심은 찾은 해리슨 교수님은 블록 몇 개를 자기 앞으로 가져와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치료자는 토니와의 관계에 ‘같은 놀이를 좀 떨어진 옆에서 독자적으로 함으로써 함께한다 ‘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토니가 어깨 너머로 치료자를 힐끗 봤다. 그러더니 치료자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아니, 아니! 그 블록을 그렇게 사용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쌓으면 안돼요.”
언어적으로 치료자의 행위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토니는 치료자에게 더 가까이 와 있었고, 시선은 치료자를 향하고 있었다 (눈을 똑바로 바라본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블록 놀이라는 공통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블록 쌓기라는 공유될 수 있는 경험을 기반으로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 만난 순간과 조금 다른 새로운 의미(맥락 혹은 규칙)를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단절되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