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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Oct 23. 2018

무력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한 감각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접하고, 관련하여 인터뷰를 준비해서 내보내고, 이어지는 보도나 여론지형을 쭉 살펴보며 느끼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빈곤함을 감수하며 매일 노력하고 살고 있을 뿐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의해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라는 진실을 우리는 감당하기 어렵다.(김민하)"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의해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 분명 이 사건을 접한 직후부터 거대한 무력감과 공포가 내 일상에 침입해 들어왔다. 많은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아니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살아왔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피의자의 심신미약 감형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이 95만명을 돌파했다. 오늘 아침엔 피의자 신상이 공개됐고 굳이 안보려고 해도 뉴스창이 온통 그 얼굴과 이름으로 도배돼있었다. 자연스레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토론도 꼬리를 물었다. 일 있으면 반복되던 찬반 양론이 유례없는 끔찍함이라는, 익숙한 변주와 함께 오늘도 반복되었다. 


10월 23일 0시 20분 기준


여론은 피의자 신상공개를 찬성한다. 근거로는 '피해자 혹은 유족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봐라' + '신상공개가 일종의 처벌이니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범죄예방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시된다. 잔혹한 범죄가 벌어지면 항상 고개를 드는 사형제부활론, 피의자가 미성년일 경우에 제기되는 소년법 개정론이 다 같은 맥락이다.


2016년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그런데 나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이미 구속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도무지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몇 번이나 봤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의해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공포와 불안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불안과 공포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링크한 평론에도 써있지만 사회적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응징이라는 정동에 끌려가는 길의 끝은 결국 두테르테의 필리핀이다.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라면 어디서나 벌어지는 신상털기와 공개처형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혹은 법을 바꿔서라도) 해보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안적이고 실효적임과 동시에 여전히 이상적 사회상을 포기하지 않는 종류"의 대응, 이런 공자님 말씀스러운, 당연히 맞는 말을 찾는데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며, 일종의 정치인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벽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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