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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ul 12. 2021

조 대리의 치마가 길어진 이유

문래동 기획회의 06.



정확히 작년 봄부터였다. 너무 좋아해서 색깔별로 사 두고 입던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날이었는데, 갑자기 이 옷을 입고 있는 내 몸 전체가 좀 주책맞다고 느껴졌다. 무릎 바로 위로 올라오는 짧은 기장도 그랬고, 발랄한 체크무늬도 그랬고 귀엽게 파인 스퀘어 모양의 앞섬도 그랬다. 모든 게 너무 나와 안 어울리게 느껴졌다. 와, 그건 정말 '갑자기'여서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그날 이후로 내 옷방을 채우고 있는 그 수십 벌의 옷 중 단 하나도 입을 것이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옷들의 구성은 대체로, 아니 거의 전부 짧은 기장의 치마, 원피스가 다였다. 바지도 반바지 겨우 몇 벌. 그렇다고 옷들이 뭐 구멍이 나거나 찢어진 게 아니니까 입고 출근할 수는 있었지만, 거의 반 벌거벗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제까지 잘 입고 다니던 옷인데도 어쩐지 내가 입은 옷을 보고 사람들이 '아유, 저 나이에 좀 안 어울리지 않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이유는 첫 번째 '나이'였다.


신기한 건 딱 서른 넷이 되던 날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시점에서 그 감정이 일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쁘다고 생각하며 실컷 입던 블라우스, 뷔스티에 스타일의 치마, 특히 상의 하의를 가릴 것 없이 고수했던 땡땡이 무늬들, 하늘하늘 나풀나풀 재질의 것들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촌스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내가 옷 입는 것을 볼 때마다 언니들이 "참, 너 같은 옷을 어디서 잘도 산다."며(물론 언니들과 나는 나이가 먹어서도 좋아하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약간 메스꺼워(?) 하던 것도 갑자기 싹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실제로 몇 년 후, 나 역시 그런 옷차림을 한 어린 친구들을 볼 때 '저게 예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짧은 기장의 옷이 유행에 맞지 않는 탓도 있었다. 나는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도 세탁소에 가서 기장을 수선해 입을 정도로 짧은 옷을 선호했다. 이유는 작은 키가 더 작아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허벅지의 가장 얇은 부분, 그러니까 무릎 위 허벅지가 시작하는 그 부분을 보이게 함으로써 다리 전체를 아주 조금이나마 얆아보이게 하고자 하는 나 나름대로의 계산된 기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해, 내가 쇼핑하기가 아주 어려워진 것이다. 이유는 중-장 기장의 옷들이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쇼핑몰의 원피스/스커트 카테고리에 도무지 짧은 기장의 디자인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정도의 기장이야 그 핏을 유지한 채 조금만 줄이면 된다지만 중-장 기장의 롱한 디자인은 애초에 그렇게 입게끔 만들어진 것이라 내 마음대로 줄일 수도 없었다.

'요즘 왜 이렇게 짧은 원피스를 안 파는 거야.'를 몇 십번 되뇌이며 디깅에 디깅을 거듭하던 어느 날, 느껴 버린 것이다. '짧은 치마'는 이제 촌스럽다고.


다시 춘추복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나는 과제와 같은 쇼핑을 해야 했다. 지난 봄 임시방편으로 사놓은 어중간한 길이의 스커트와 기존의 상의들은 전혀 매치를 이루지 못했고, 부랴부랴 회사에 입고 가야 할 노동복(?)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9월, 우리는 이사를 했다. 우리가 옷방으로 정한 방은 3개의 방 중 가장 작았고 강제 의류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때가 와버렸다. 미니멀리즘까진 안 가더라도, 입지 않으면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옷들이 너무 많았기에 처치가 필요했다. 헹거에 옷걸이를 걸 공간과 옷방의 크기는 한정적인데 절대적으로 새 옷들을 사야 하니, 기존의 옷들이 비워져야 들어설 곳이 생기는 것이 마땅했다.


이사 하고 옷정리 하던 현장. 저... 저렇게 짧은 걸 대체 어떻게 입은 거야? (의문)



사실 그 전부터 옷은 조금씩 버려오고 있었다. 2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리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그러지 못한 옷들이 많았다. 정 마음이 머리를 못 이길 때는 와인 한 병 따서 홀짝 홀짝 마시면서 하거나, 여러 번 봤던 영화 하나 틀어놓고 '이거 끝나기 전까지 딱 5벌 정한다' 하고 '시이작!'하기도 했다. 술이 조금 오르면 추억에 더욱 젖어서 버리지 못하는 불상사가 가끔 생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과감해졌기 때문에 맨 정신에서 보다는 뭔가를 버리기가 훨씬 쉬웠다.


그렇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도 남은 아이들이었다.


이옷을 보면 '이거 입고 그때...' 이러고 저옷을 보면 또 '아 저거 입고 거기 갔었고...' 이러고 앉아서 추억 되새김질만 계속 되풀이 하다 결국엔 버리지 못하고 다시 옷걸이에 걸고...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이었다.


이게 원피스인지 조금 긴 상의인지 헷갈리는 짧은 원피스들 속에 나의 20대가 묻어 있었다. 나에게 뭐가 어울리는지, 가장 예뻐보일 수 있는 옷을 찾아 열정적으로 사고 입고 거울 앞에서 뒤태를 확인하며 열심인 모습이 아른아른했다. 팬티가 보일랑 말랑 하던 치마를 입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팔랑팔랑 에너지 넘치게 번화가를 누비던 생기발랄한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졌을 땐, '그게 정말 나였어?' 하는 낯선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추억만으로 모두를 안고 가기엔 우리 옷방은 작았고, 옷걸이를 걸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더이상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품고 있기엔... 나는 너무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폴짝폴짝하던 20대의 나보다 '훨씬 좋음'으로 다가오는 나의 '현재'라서. 뒤를 돌아볼 시간도 미련도 없이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계절이 겨울이 되자 다시 옷 기근이 시작되었다. 옷에 대한 감정적 변화를 겪고 나서 처음 맞는 계절은 그렇게 옷 장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재밌는 건, 감정적인 변화는 신체적인 변화로도 이어졌다. 이게 또, 하의를 어느정도 감출 수 있게 되니 사람이 영 마음이 여유가 생겨서 살이 조금 붙든 안 붙든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육체적인 변화로 이어졌고 나는 이제 자의가 아닌 타의로(짧은 치마를 입기엔 이제 좀 많이 두터워진 하체...) 치마 길이를 줄일 수 없게 되었다.


"대리님, 치마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거 같아요?"

입사 시절부터 5년여 동안 나를 쭉 지켜봐오신 다른 팀 팀장님이 어느 날 말씀하셨다.

"헤헤. 그렇죠? 아유, 팀장님 저도 나이 드나봐요. 요즘은 짧은 치마 남사스러워요."

나보다 연배가 훨씬 위인 팀장님은 나의 넉살 좋은 농담에 '으하하하' 하고 호쾌하게 웃으셨다. (여자 팀장님이기도 했고, 그런 말들이 서로 전혀 기분 나쁠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불쾌할 상황은 아니었다.)

"에이, 우리 대리님. 발랄발랄 상큼상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죠오?"

"팀장님, 저 지금도 승큼~합니다. 헤헤."


'상큼'의 모음이 다 뭉게질 만큼 나는 이제 그 단어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팀장님의 그 말이 어찌나 가슴 뭉클하던지. 누군가는 나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구나. 다리의 살색 면적을 최대한 드러내며 '어린 예쁨'을 뽐내던, 일 할 때도 놀 때도 언제나 '저요 저요!'하며 손 들던 패기 넘치던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아직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긴 치마와 무릎 아래로 오는 원피스로 다시 채워진 내 옷방엔 해가 바뀔 때마다 버릴 옷이 생기고 새로 사야 할 옷이 생기겠지만, 새로 채워질 시간으로 지나간 시간이 다 없던 일처럼 묻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현재'를 사랑한다고 해서 '과거'는 모두 등지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 잘 안다.


짧은 치마만 입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 롱스커트들이 더 뿌듯한 것처럼.




방실방실 아조씨 | 포차성애자. 소녀 감성과 아저씨 취향 그 사이 어디쯤에서 소맥을 말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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