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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Nov 10. 2024

가족- 엄마. 슬픈 땐 손을 잡는 거야

엄마가 울고 있을 때 나는 언제나 머뭇머뭇 엄마의 손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내가 울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없었지만, 티비 드라마나 책속에서 사람들은 그랬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들의 흉내를 내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 울면 누군가 손을 내민다. 그러면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온기를 느끼면서 슬픔을 나눈다. 그들 사이 공기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어린 나는 그런 장면을 꿈꾸며 몇번쯤 손을 내밀어보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의 손을 뿌리쳤다. 손도 뿌리치는데 언강생심 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몇번의 과정 끝에 난 엄마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걸 포기했고 나의 슬픔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돌아서서 자신조차 모르게 울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집밖을 떠돌다 돈도 건강도 마음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나는 단골 떡볶이집 아줌마 만큼도 정이 안 느껴지는 엄마와 살게 걱정이었다. 갈 데가 없어서 얹혀살러 온 것이니만치 더 그랬다.


서로 데면데면하면서 지내던 나날 중 엄마에게는 또 울만큼 속상한 일이 생겼다. 엄마는 이런 모습을 들키는 게 기분 상하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짜내듯 몇방울의 못마땅한 눈물을 흘렸고, 나는 시험에 빠진 기분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렸다.


'아 어쩌나? 슬플 땐 좀 슬프게라도 울면 좋을텐데 저렇게 얼굴을 정나미라곤 한웅큼도 없게 찡그리냐. 그만 냅둬?'


하지만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이번에도 역시 난 엄마의 짠 눈물을 외면하지 못하고 손을 내밀고 말았다. 엄마의 마르고 강팍한 손을 잡은 느낌도 잠시, 다시 엄마는 내 손을 매섭게 뿌리쳤다.


아, 역시.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이 상했다. 맥이 풀려 다시 돌아서려는데, 가만, 이번엔 무언가 느낌이 틀렸다.


자세히 보니 엄마는 스스로도 그렇게 하고 있는 줄 모르는 듯 했다. 내 손을 탁 치는 엄마의 손과 눈은 의식적이기보다는 반사적, 어색함, 이상함 등의 기운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이 새로운 깨달음에 반신반의했지만 한번 미친 셈치고 물어보기로 했다. 어쩌랴, 밑져야 본전 아니면 말고. 난 더 잃을 게 없다.


"엄마 손 좀 뿌리치지 마! 내 손이 그렇게 싫어?"


그러자 엄마는 순간 멍해진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어, 내가 그랬냐? 잘 몰랐는데?"


난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쏟아냈다.


"엄만 옛날부터 내가 위로해주려고 손 잡으면 항상 뿌리치거나 뺐잖아. 그게 나한테 얼마나 상처였는데..."


"내가 그랬니? 난 진짜 몰랐는데. 기억도 안 난다, 야."


이런 세상에. 몇십년 동안 미숙한 두려움인줄 알면서도, 내가 남에게 먼저 손을 쉽게 내밀지도, 내밀어진 손을 흔쾌히 잡을 수도 없게 만든 이 오래된 거부의 행동을 엄마 스스로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정말로 한 십년치 맥이 팍, 풀리는 느낌이었다. 좀 확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주는 위로따윈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 나는 남을 위로할 수 없다는 불능의 무력함을 무의식중에 심어준 원인 중 하나, 일상적인 거부의 습관화와 체념, 작지만 마음에서는 절대 사소하지 않은 행동, 한번 거부는 영원한 거절, 누군가 날 안았을 때 나의 뻣뻣함.


짧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파바박거리며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내가 아무말도 못 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니 엄마가 슬슬 내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많이 섭섭했어? 뭘 그런 걸 가지고 섭섭해하냐."


"엄마한텐 별일 아니라도 나한텐 정말 힘든 일이었어. 엄마가 손도 안 잡아주고 안아주지도 않는게 얼마나 슬펐는데. 지금도 난 그래서 남 손 잡는 거나 안는 게 어색하잖아. 어릴 때 잘 못 해봐서."


"그래도 내가 도망을 갔냐? 밥을 안 줬냐? 학교를 안 보내줬냐? 그런 걸 해준 게 다 널 위해준거지 꼭 빈수레처럼 손 잡고 안아주는 게 중요해? 그리고 힘들어 죽겠는데 손 잡고 있을 정신이 어디있냐? 일단 일을 해결하고 봐야지."


"그래, 난 중요해. 밥 한끼보다 손 한번이 뽀뽀 한번이 더 중요했어. 손 잡아주면 힘내서 더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막상 굶어봐라. 그런 말이 어디서 나오나. 우리 땐 그런거 생각지도 못했다."


휴, 난 한숨이 나왔지만 세게 나오는 말투와 달리 왠지 미안한 기운이 느껴지는 엄마의 표정에 오늘의 1라운드는 그만 하기로 했다. 나역시 익숙치 않은 엄마와의 솔직한 대화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져 속이 울렁울렁했으니까.


엄마와 나의 사고 구조는 이렇게 하늘과 땅 만큼 멀 때가 많다. 이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을까.


왜 엄마는 손 잡고 안는 걸 잘 못하게 되었을까. 짐작은 가나 확실히 알 수 없고 듣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어린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준 사람은 과연 있었을까.


13살에 돌아가셨다는, 성질 사나워 매타작하기 일쑤였다는 얼굴도 못 본 외할버지나 많은 자식들을 혼자 먹이느라 바뻤던 외할머니나 나이차이가 많은 형제들이나 모두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을 것 같다. 물어보면 대답하려나.


"그래 맞다. 누가 살갑게 대해주는 거 난 기대도 안하고 살았다."라고. 이렇게 대답할 때 엄마가 슬퍼하면, 그러면 진짜 많이 슬퍼할 거 같은데 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 그만.


아아,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가는 양탄자를 타고 두 명의 어린 소녀를 만나서 이제라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꼭 안아주고 싶다. 하나는 나 또하나는 엄마.


그러면 냉기가 그랬듯이 다시 온기도 화롯불에서 꺼지지 않고 전해지는 불씨처럼 대를 이어 전해지겠지. 손과 손, 가슴과 가슴을 통해. 엄마와 딸 그리고 다시 또 엄마와 딸로. 그랬다면 나도 아이를 낳고 싶어졌을까.


언젠가 내가 좀더 힘이 생긴다면, 엄마가 다시 울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싶다. 아마 내딴에는 죽을 만큼의 용기를 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뿌리치더라도 못 뿌리치게 꽉 잡고 말하고 싶다.



- 엄마 슬플 땐 손을 잡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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