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7장
두 사람, 같은 위치에 앉아 있다.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고 전보다는 훨씬 익숙해진 모습이다.
민서 오늘은 뭘 할까.
소정 할 게 있나.
민서 기다리는 건 싫다고 했잖아.
소정 그러니까. 그것 말고 할 게 있냐고.
민서 고민해 보는 거지.
소정 답이 나오는 문제야?
민서 글쎄.
소정 그러면 시간 낭비야.
민서의 핸드폰이 다시 울려댄다.
민서는 핸드폰을 그냥 뒤집어 놓는다.
소정 누군데?
민서 집주인 할아버지.
소정 왜…… 연락 오는데?
민서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일, 집세를 안 내서. 이, 집에서 안 나가서.
소정 받지 않는 게 좋겠다.
두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다.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소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민서 왜 그래?
소정 들었어?
민서 뭘?
소정 계단 올라오는 소리― 그리고 (사이) 지금 계단 내려가는 소리.
민서 잘 안 들려.
소정과 민서, 뛰어가서 문에 귀를 댄다.
민서 맞아. 맞는 것 같아. 나가 볼까?
소정 잠깐만!
민서 왜 그래?
소정 그냥 통지서가 온 거면 어떻게 해?
민서 그럼. (사이) 내일 다시 봐야지.
소정 그건 싫어.
민서 그러면 지금 가서,
소정 그것도 싫어. 아니야, 나는 그냥―.
민서, 소정의 손을 잡는다.
민서 지금 확인해야 돼. 돌아올 수 없는 강이더라도. 선택해야 돼.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본다.
소정,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간다.
민서, 성호를 긋는다.
민서 제발…… 하나님…… 제발…….
소정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는 소정.
민서 편지 왔어?! 왔구나!
소정, 편지와 소포 하나를 들고 있다.
소정, 편지를 꺼내 읽는다.
민서, 옆에서 숨죽이고 기다린다.
소정 돈을 대주겠대.
민서 일론 머스크가?!
소정 식당 일을 하고 있는데,
민서 일론 머스크가?!
소정 한 달 정도는 가능할 것 같대.
민서 (감격에 차) 한 달! (의문스럽게) 한 달?!
소정 우리 엄마가. 학원비를 대주겠대.
민서 다른 건 없어?
소정 뭐가 또 있어야 하는데?
민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우편함을 확인하러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민서, 문 앞에 서 있다.
민서 어머님한테 보냈어 편지를?
소정 넌 누구한테 보냈는데?
민서 난…… 일론 머스크한테.
소정 또?
민서, 고개를 젓는다.
민서 물어봤잖아, 내가. 돈 안 줄 것 같은 사람한테 보내는 건 시간 낭비고 종이 낭비라며. (사이) 네가 어머님한테 편지 보내기 싫다고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잖아, 나중에, 나중이 되고 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잖아. 내가 못 미더워?
소정 우린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민서 왜 없어. 넌 그림도 그리고, 나는, (사이) 종이접기도 할 수 있고.
소정 내가 유학 가려던 게 문제였어.
민서 왜 유학 가고 싶으면 안 되는데? 왜 잘 그리는데도 유학 가고 싶으면 안 돼?
소정, 대답하지 않는다.
민서 대답해, 응? 소정아, 왜 안 되는데.
소정 나 잘 못 그려.
민서 거짓말.
소정 나 잘 그리는 거 아니야. 학원에 상담 갔을 때도,
민서 아무것도 안 들을 거야.
소정 그럼 우린 계속 이렇게 있는 거야. 평생을 기다리면서.
사이.
민서 그럼 난 어떻게 해? 네가 아무것도 안 하면.
민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민서 네가 아무것도 아니면 나는 어떻게 해? 그럼, 내가 봤던 건 뭐야. 우리 처음 만난 날 내가 봤던 건 뭐야. 그때 네가 그렸던 그림은 뭐가 되는 건데…….
소정 그건, 그냥 기억.
민서 아무것도.
소정 그래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만 아는 기억.
민서 추억?
소정 응. 아무것도 증명되진 않는 추억.
사이.
소정 슬퍼?
민서 마음이 아파. 너는 슬프지도 않아?
소정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삼 년 전이었으면, 울었을 것 같기도 해. 근데 지금은 눈물이 안 나.
민서 삼 년 후에…….
소정 나 갈 거야 유학. 갈 건데, 지금 말고. 지금은 일단…… 언젠가…….
소정, 집을 한 번 둘러본다.
소정 일단 이사부터. 이사부터 가야지.
민서, 현관에 놓여 있는 박스를 열어 본다.
민서 하하…….
소정, 박스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낸다. 소정의 목소리가 떨린다.
소정 애청자 소정 님을 위한 특급 선물. 일곱 가지 색깔의 락스 세트……. 역시 인생이랑 투자는 타이밍인가 봐.
소정, 민서의 옆에 앉는다.
소정 (사이)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네가 유학 가고 싶다고 하면, 돈 대줄게. 다-.
민서 나는, 유학 가는 거 싫다?
소정 정말?
민서 소심해서…….
소정 다행이다. 삼 년 후에. 나 정돈되겠다.
사이.
소정 아직도 과거로 가고 싶어? 우리 처음 만났던 때로?
민서 모르겠어.
소정 난 아니야. 난 지금도 좋아. 그래서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부서진 건 부서지게 두고, 찢어진 건 찢어지게 두고…….
민서 마음이 아파.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