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리개를 호텔웨딩에서 만났을 때
후다닥 뛰어나가는 의상팀.
스탭 손에 단단히 쥔 <바늘집노리개>
“저기요, 그거 안 되는데요.” 불안하게 외치는 나.
…… 몸도 재기도 하지, 이미 촬영장 안으로 들어간다.
배우가 착용한다, 바늘집노리개.
'…… 아, 그거 아니라니까, 진짜……'
나는 이미 촬영장 소품 스탭한테 그 소품은 전통에 안 맞는다고 얘기를 했고, 의상 스탭한테도 신분과 의상이 맞지 않는다고 한 소리를 했다. 오늘치 잔소리 분량을 모두 채웠다. 덥고 춥고 힘든 야외촬영장에서 지적질하는 바느질 선생이라니. 누구도 반길 일이 아니다. 두 눈 질끈 감고 좋은 게 좋으려니 하고 넘어가는 성격이라면…… 나는 애당초 궁중자수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까탈스러운 성정(性情)을 극대화하는, 나는 ‘한 땀 한 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내 손 닿은 일에 대해서는 몹시도 깐깐하고 예민하다.
<조선빈티지> 이름으로 참여한 드라마, 영화, CF 모두 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영상을 어떻게 찍었던, 일단 우리의 자수와 매듭이 찍히는 이 장면만큼은 전통공예 규칙에 어긋나지 않길 바란다. 나의 바람은 종종 현장스탭에게는 불편한 오지랖이 되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곱게 얘기한다고 해도 서로 중요도와 가치가 다르니 부딪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극내향형인 나도 이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심리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래서 그런가, 방송국 PD, 제작사 전화번호는 애써 저장하지 않는다. 일단 손대면 나도 너무 피곤하다. 그러나 영원히 기록될 장면이 엉망진창으로 찍히는 피로감에 비할 일은 아니다.
오늘의 피로감 주제는 <바늘집노리개>(=바늘쌈노리개)였다. 바늘쌈노리개는 바늘을 보관하기 위한 장식류가 포함된 노리개의 한 종류이다. 침통을 금속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는 수놓은 원단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특별히 은으로 만든 바늘집 장신구는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귀한 노리개 장식으로 많이 쓰인다. 세월이 스민 은제 바늘집 장식은 고운 매듭끈과 매듭술 사이를 연결하며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낸다. 예로부터 바늘은 “행운”을 상징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여인들은 바늘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다. 귀한 바늘을 보관하기 위한 바늘방석이나 바늘쌈노리개 역시 정성을 많이 들이는 규방공예 소품이었다.
최근에 한복장신구로 많이 보이는 <자수바늘쌈노리개>는 [끈고리, 수놓은 바늘집조형, 꼬리장식]으로 구성된다. 가장 상단에 위치하는 얇은 고리끈부터 시작되는데, 대략 폭 1cm 정도의 원단끈을 만들어서 절반을 접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길이는 약 15cm 정도인데, 저고리나 치마에 쉽게 걸 수 있도록 만든다.
이어서 수 놓인 바늘쌈 조형은 윗뚜껑과 아래 받침 2단으로 나뉘어 있는 경우, 또는 한 개의 바늘방석으로 구성되는 경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2단으로 구성된 바늘쌈 장식의 경우, 각각 자수로 장식을 하고 특히 아래 받침에는 솜까지 넣어서 볼륨감 있게 만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하트를 2개 겹쳐 놓은 모양 또는 복숭아 2개를 겹쳐 놓은 듯한 모양이 많다. 간혹 복주머니 모양과 골무 모양을 합쳐놓은 바늘쌈 노리개도 볼 수 있다.
여닫는 뚜껑과 받침 사이에 바늘을 보관한다. 두 원단이 겹쳐진 공간은 바늘이 산소와 맞닿아 금방 산화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바늘이 꽂히는 부분 안쪽으로는 솜 대신 머리칼을 모아서 채워 넣기도 한다. 머리기름 덕분에 바늘이 녹슬지 않고 오랫동안 안전하게 바늘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늘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겉이 뻑뻑해지면 금방 부러지는데, 규방공예 동네에서 매우 금기시된 일이다. 바늘은 '길운'(吉運)을 상징했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했다. 여인의 바늘이 부러지는 일은 가족들에게 액운이 미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즘도 바느질하다가 바늘을 부러뜨리면 선생님께 혼난다)
전통적 의미와는 별도로 실질적으로도 바늘을 부러뜨리면 안 될 이유가 충분했는데, 지금은 바늘 1개에 500원 남짓한 가벼운 도구지만(물론 바늘 장인이 손으로 직접 만든 바늘은 꽤나 비싸다) 조선시대에는 먼 곳으로 출장 간 남편이 바늘 6개를 소중하게 보내올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수놓은 바늘쌈장식에 이어 꼬리 장식으로 이어진다. 보통 노리개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술을 잇는다. 일반적인 노리개의 매듭장식이 끝나고 이어지는 찰랑찰랑 흔들리는 실들을 ‘매듭술’이라고 일컫는다. 고운 매듭술을 만드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장난이 아니다.
1) 명주실을 염색하고 그늘에 말린다
2) 매듭술 하나에 100가닥이 넘는 명주실 하나하나를 사람 손으로 꼬아서 높이를 맞춘다
3) 꼬아진 매듭술 전체를 증기로 찌고 말린다. (그래야 매듭술의 꼬임이 고정된다)
4) 그 실들을 모아서 한지로 만든 원통형 속심에 감고 뒤집어서 다른 비단실 장식까지 마무리한다.
이 같은 과정을 3번 반복해야 삼봉노리개 겨우 한 작이 완성된다. 손이 빠르고 기술이 익숙해져도 족히 일주일은 꼬박 붙어서 해야 할 일이다. 개선된 도구와 좋은 기술을 갖춘 지금도 큰맘 먹고 해야 할 일인데 조선시대는 말할 일도 아니다……
https://youtu.be/DhsfNTN4OR4?si=GwgDRNWvTtKDrPzK
그래서 노리개는 조선시대 상류층에게도 비싼 물건이었다. 끈염색부터 매듭술을 꼬는 과정까지 모두 온전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흔치 않은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해야 했다. 더해서 바느질 동네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손으로 만든 물건은 모두 복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여긴다. 애써 만든 노리개더라도 때가 타거나, 매듭이 헐거워지면 더 이상 복을 담지 못하는 물건이라 여기고 폐기처분한다. 예나 지금이나 노리개는 세탁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노리개에 달려 있는 보석만 따로 떼서 새롭게 노리개를 다시 제작하는 풍습이 여적 남아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선시대 서민층은 제대로 된 노리개 하나 갖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사대부가 아닌 서민층에게는 노리개 착용이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노리개 가격은 국법보다 더 먼 곳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서민층 부녀자들은 한복장신구에 대한 욕구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싼 노리개술 대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냈고 결핍은 오히려 새로운 장신구 장르를 만들어냈다. 실크술이 찰랑거려야 하는 꼬리에 색색깔 다른 원단으로 노리개술을 대신하는 [색천]이라는 노리개 구성이 생겼다. 시간을 들여서 자수를 완성하고 그 아래에 색천까지 매달아서 그럴듯한 노리개를 만들어냈다. 실무적으로 편하게 ‘색천노리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서민들의 장신구로 분류된다. 민속품에서 자주 나타나고 궁중유물에서 찾기 쉽지 않다.
본래 노리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커다란 보석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한복에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인데, 조선시대 서민층 부녀자들은 노리개에 달만한 주먹만 한 보석들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장신구를 만들어냈다. 주먹만 한 보석 대신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귀한 전통자수가 그 자리를 매웠다.
다양한 규방공예 소품들은 귀한 자수를 휘두르고 보석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바늘쌈, 바늘방석, 실패, 복주머니, 골무 등이 노리개 주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색천으로 마무리하며 서민형 노리개를 완성한다. 혼례품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데 친정어머니들이 시집갈 딸을 위해 수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값비싼 보석을 해줄 수 없는 가난한 집안에서 시간과 정성을 오랫동안 들여서 딸을 위한 자수를 놓았다고…… 그래서 수놓아진 민속품 -특히 오래된 혼례용품- 에는 궁중자수만큼이나 완벽한 기술과 조형미는 담지 못했지만 어머님들의 애틋한 사랑은 언제나 담겨 있다고 배운다. 아련하다.
그러나 여기는 ‘아련’과는 거리가 머나먼! 21세기 격동의 사극촬영장!
양반댁 규수는 비단옷 입고 은제 뒤꽂이를 하고 금박으로 장식된 빨간 댕기를 드리웠다. 그리고 삼월이, 꽃분이가 할만한 <바늘쌈노리개>를 채워주니 나는 외롭게 외쳤다.
“저기요, PD님, 그거 안 되는데요.”
…… 몸도 재기도 하지, 이미 촬영준비 완료다. 주연배우 한복 눈물고름자리에 바늘쌈노리개가 자리 잡는다. 나의 안타까운 눈빛도, 목구멍으로 사그라드는 소리도, 어정쩡하게 휘젓는 손짓도 무기력하다. 제발 배우가 그대로 앉아서만 찍었으면 싶다. 속주름 가득한 폭넓은 고급치마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치마 속주름으로 저 노리개 하나쯤은 가려졌으면 했다. 아휴~ 스탭이 일도 잘한다. 치마에 싸여서 안 보일까 봐 노리개를 쫙쫙 펴준다…… 나는 이제 그만 보기로 한다. 양반 아가씨가 잠깐 꽃분이 노리개 했나 보다, 그렇게 상상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가 않다.
요즘 한복동네에 무슨 유행인지 저 바늘쌈노리개가 다양하게 변모하여 혼주한복, 신부한복에도 등장한다. 디자인이 예뻐서 선택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유래는 알려주고 당사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치마, 저고리 입는다고 해서 한복이 아니듯 격식에 맞는 장신구까지 곁들여져야 할 텐데, 의상과 장신구의 격이 맞지 않으니 간혹 결혼식장에서 표정관리 할 일이 생긴다. 특히나 고급 호텔 결혼식 사진에서 아쉬운 한복장신구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매우 안타깝다. 전통이 일상으로 스미지 못하고 이미지만 가볍게 사용되는 현실을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옛 유래와 별개로 마음에 든다면 문제 될 일은 아니지만 방송에 쓰이는 일은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이어야 하지 않을까. 양반의 한복을 입고 서민의 장신구를 착용하는 장면이 최소한의 전통을 지킨 사극인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요즘 같은 현실에서 100% 조선의 규칙에 맞춰서 촬영할 수 없겠지만 양보하지 않아야 할 마지노선은 갖고서 방송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깐깐한 바느질 선생은 기어이 말을 못 참고 글 하나를 남겨 놓는다. …… 다음 드라마부터는 섭외가 안 올 것 같다…….
사진참조 : e뮤지엄에서 사진자료를 참조했습니다
동영상 : 국립무형유산원 유튜브 자료
내용참조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규방문화>, 나신걸의 한글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