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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17. 2020

주사위 던지기

준비#4 지원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강을 건너던 시저처럼, 출사표를 던지는 제갈량의 맘으로, 못 자고, 못 먹으면서 준비한 지원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전형이 온라인으로 제출만 하면 되어서 컴퓨터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면 되었지만, 유독 원본 증명서를 요구하는 학교들이 있었다.


유학 지원을 처음 해보는 데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지도 한참 지난 터라 일단 학교에 가서 서류를 떼어야 되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몰래 영어 시험 준비한다고 팀에 민폐를 끼치고 있었으나, 어찌하랴?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교로 가서 정성스레 서류를 발급받아 혹여나 배달사고라도 날까 싶어 DHL로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보냈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그야말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외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어느 학교에서 온 긴 메일을 읽어보니, 결국 "너 왜 서류 안 보냈니?"였다. 아니, 그 학교에서 유독 원본 서류 보내라고 해서 내가 점심에 모교 행정실까지 가서 서류 떼다 DHL로 보냈는데 뭔 소리여?라고 답장을 보냈다. 얼마 있다 온 답장 왈, "너네 학교에서 서류 보내주는 서비스 있는데 너는 도대체 어떻게 보낸 거야?, 너네 학교 졸업생이 한해에 얼마나 많이 지원하는지 아냐?" 결국 DHL로 보낸 내 서류는 도착도 못하고 결국 다시 모교를 방문해 다시 한번 미국까지 생돈을 날려 보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미국 학교에 집중했다. 점수는 낮았지만 GRE 점수도 있는데, 학부 때 힘들게 수학 수업도 들었는데 하는 마음에, 회사에서 허락해주는 50위권 대학 중 내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 좋은 교수님들이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지원했다. 약 스무 개가량 학교에 지원을 하고 나니 뭔가 된 것 같이 뿌듯하고 어느 학교를 가게 될까나 상상도 해보니 뭔가 이미 캠퍼스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붕 뜬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엇!!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다. 떨어졌다는 소식이라도 오면 감사한데... 온라인 상에는 이미 어느 학교에는 합격자 이메일을 뿌렸다더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고우해커스에는 합격수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올 리젝"이 내게 찾아오시려는가? 어떻게 해야 하지 짱구를 굴리다가, 영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꿩 대신 닭"이던 영국이 내 인연이 된 것이다.


영국 대학은 미국 대학과 달리 지원이 무척 간단했다. "엥? 이게 다야?" 싶을 정도로 몇 가지 서류만으로 모든 전형이 끝난다. 회사에서 제시한 기준은 영국 내 10위권 대학이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도 다 아는 가장 상위권 대학 옥스퍼드, 캠브리지를 제외한 다른 학교들은 다 지원을 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영어점수가 부족해서도 있지만, 박사과정으로 바로 진학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두 학교는 미국 학교와 마찬가지로 석사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에게만 박사과정 진학을 허락했다. 가족과 함께 유학을 가야 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힘든 석사과정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영국 대학에 지원을 모두 마쳤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자 더 불안해지기 시작해서 각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을 꼼꼼히 다시 읽어 보았다. 어! 그런데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는데, "Supervisor"와 미리 상의한 후에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원할 때 학교에 어느 교수와 상의를 했냐는 질문이 있어서 의아했는데, 자신의 박사과정을 지원해줄 교수와 사전에 협의를 마친 이후에 지원을 하는 것이 순서였던 것이다.


다급해진 나는 내 전공과 유사한 분야의 연구를 하는 영국 내 10위권내 대학의 모든 교수님들에게 연구제안서와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회사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공부를 하러 갈 생각입니다라는 공손한 인사와 함께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어떤 교수님은 나는 그쪽 분야는 관심이 없는데 우리 학교에 A 교수님께 연락을 해보라든지, 너의 제안서가 흥미로워 보인다. 일단 공식적으로 접수를 하면 검토를 해보겠다, 등등.. 그러다가 나를 구해주신 운명의 교수님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관심이 있는데 성적표를 한 번 보내 볼래? 스캔해둔 성적표를 보내 드렸더니, "인터뷰를 보고 싶다. 당장 내일 스카이프로 볼 수 있을까?", "예"라고 했으나 "스카이프가 뭐예요?"라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나는 여기저기 수소문해 화상 대화가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우 겨우 회원 가입을 하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구석에서 화상 인터뷰라는 것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자기소개를 하고, 무슨 공부를 했고,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맘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저를 뽑아주실 건가요?"


"그럼, 널 만나게 되어 반갑다."

그것이 나와 내 지도교수님 Dr.Kruase와의 첫 만남이었다. 줄여서 Dr.K라고 하겠다. 알고 봤더니 그는 초임 교수 때부터 경영학과에서 교수생활을 했었는데, 거시 경제를 연구하는 분들과의 협업이 필요해서 최근에 경제학과로 옮긴 분이셨다.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나를 좋게 보시는 경제학과 교수님들이 드물었는데, 내가 공부해보겠다고 하는 분야가 마침 경영학과 경제학의 경계선 상에 있던 터라, Dr.K의 관심사와 정확히 일치했었던 것이다.


세상 인자한 표정의 Dr.K    <출처 :Linkedin>



그렇게 나와 맞는 단 하나의 대학과 만나게 되었다. 최종 지원 결과 30전 29패 1승... 아무렴 어떠하랴? 어차피 하나의 대학만 갈 수밖에 없는 걸... 그리고 박사과정 지원 첫날부터 맘속에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고민하지 않도록, 딱 하나의 대학만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요" 듣도 보도 못한 영국의 Bath라는 곳, 나의 기도제목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곳에는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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