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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18. 2020

출국 준비

출국#1 들어가기 위한 준비

  아내에게 울며 불며 매달려 겨우 온 가족이 다 같이 유학길을 떠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아내는 본인의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한 시기를 비우는터라 결정이 무척 힘들었으나, 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줄 수 있다는 명목에 결국 힘든 결정을 해주었다.


  자.. 그럼 이제 뭐부터 해야 할까? 당장 가는 거야 비행기표 사고 며칠 묵을 숙소만 구하면 되지만, 우리는 짧으면 3년, 길면 4년을 그곳에서 살아야 하기에 계획이 필요했다. 주변에 영국에서 유학하신 분들을 찾아 여러가지를 수소문 하기 시작했다.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며, 차는 어떻게 사야하는지, 뭘 알아 봐야 하는지.. 등등.. 지금 돌아보면 그 분들의 조언은 정말 필수적인 것들이고 꼭 필요한 것들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영국 현지에서 필수적인 포털사이트는 내게는 그냥 영어로 된 외국 홈페이지였고, 모든게 낯설었다.

  "그래, 그런건 일단 현장에 가서 해결해보는 걸로 하자. 암, 현장이 중요하니까..."


 모든 걸 뒤로 미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미룰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자신청이었다. 꾸역꾸역 절차를 알아보고 비용을 계산하고서 깜짝 놀랐다. 비자 신청비를 받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었으나, 의료비용을 가족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그것도 체류기간에 비례해서 내라고 하니 꽤 엄청난 규모가 되었다. '왜 굳이 박사과정을 지원해가지고 4년을 머물러야 하니 이 돈을 내지..'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누구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게 되었다. 그런데 비자신청은 돈만 낸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가족 모두가 꼭!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결핵검사를 해서 그 결과를 제출해야만 했다. 네 살 배기 아들은 문진으로만 했는데도 검사비를 다 내야해서 또 한 번 찝찝했다. 

비자발급을 위한 결핵검사서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만 가능)


  많은 이들이 영국의료 시스템의 비효율성, 오랜 대기에 힘들어하고 불평을 토로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나름 꽤 혜택을 받았다. 특히 어린이들은 모든 의료 비용이 모두 무료라, 치과 정기검진, 천식 치료 기타 등등 아들이 꽤 많이 병원 신세를 졌음에도 아무런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아내도 갑자기 이두공 문제가 생겨 힘들었으나, 종합병원에 1주일이나 입원해서 치료를 잘 받았다. 퇴원하는 날 치료비 수납하는 곳이 없어 한참을 두리번 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여튼 비자 신청 과정에서 낸 돈들은 나중에 결국 그 값을 했다.


만고의 노력 끝에 겨우 받아낸 비자 발급 확인서 (실제 발급은 필리핀에서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비자 신청을 마치고 나니 진짜 떠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슬슬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것도 덤덤해졌고, 가족이 묵을 숙소를 찾기까지 약 2주간 머물 학교 기숙사를 예약하는 것도 별다른 맘의 동요없이 다 마쳤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잡히니까 처음 방문해서 2주간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조금씩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히드로 공항에 내린 다음 런던 사무소에 왔다는 신고는 해야할테니 런던에 하루는 머물러야 했다. 마침 런던 사무소에 예전에 같이 근무하시던 팀장님이 계셔서 연락을 드렸더니 기꺼이 픽업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몰든 근처에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런던 사무소에서 인사를 마치고 바스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니 기차도 예약했다. 내가 입학하게 될 과정에 계신 한국인 선배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바스 기차역 앞으로 나와주기로 하셨다.


  이제 가서 두 주 동안 열심히 집과 차를 구하면 끝이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아들이 다녀야할 학교를 생각하니 갑자기 고차원 방정식이 되어 버렸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아이를 어디에 보내야 하나? 그보다 영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 이해해야 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영국에도 어린이집이 있는지, 어린이집이 아니라면 유치원, 학교? 


  그 때만 해도 영어로 된 홈페이지의 정보를 읽고 이해해서 소화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전혀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부동산 포털을 통해서 대충 어떤 집들이 매물로 나와있는지 검색하다보니 주변의 학교 소개가 나와있고 Ofsted 점수라는게 나와 있었다. 각 학교를 Outstanding, Good, Require improvement, Inadequate 으로 구분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Outstanding으로 분류된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하고 싶게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른채 Outstanding 학교들 주변의 집들을 찾아보다가 월세와 학교와의 거리를 따져보고 몇 개 괜찮은 매물을 찍어 두었다.


Ofsted (영국 교육평가기관)의 평가 결과 (모든 학교가 정기적으로 Outstanding, Good, Requires improvment, Inadequate로 평가받는다)


  어찌 어찌 되겠지... 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영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는 더 하고 싶지도 않았고, 더 할 수도 없었으며,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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