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박사 Jun 18. 2020

영국과의 첫 만남..

출국#3 영국 입국

남대문 시장에서 산 허리춤까지 오는 이민 가방 2개를 끌고 인천공항까지 갔다. 양 옆에 각각 20 킬로그램이 넘는 큰 가방을 끌고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 그리고 대문 밖만 나서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한식이 그렇게 빨리 그립게 될지도 몰랐다. 14시간을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하는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부러 영국이 배경인 영화만 골라 보았다. 엘리자베스 여왕님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도 있었고, 런던 중심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있었다. 너무나도 어색한 브리티시 악센트를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는데, 그건 가족들들과 다시 만나기 전 한 어떤 걱정보다 사소한 것임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히드로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니 한국에서 미리 연락드린 김 팀장님께서 푸근한 미소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원래 숙소로 바로 가려던 계획이었으나 산더미만한 이민가방을 보시더니 아무래도 사무소에 내려놓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굳이 히드로 공항에서 시티로 가기로 했다. 옥스퍼드 서커스, 피카딜리 서커스, 트라 팔과 광장.. 마침 뱅크 홀리데이라 텅텅 빈 런던 시내를 구석구서 보여주시고는 런던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소 정경이 맘에 들었다.


뉴몰든 근처 숙소로 이동한 후,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밤은 깊어 오고 옆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김 팀장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어 문을 두드리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한참을 지나서 누군가가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미안하다고.. 핸드폰 번호를 바꿨는데 에어비앤비에 업데이트를 안 했다고 한다. 해는 졌고, 다리를 쭉 펴면 끝을 넘을 듯 말 듯한 좁은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떠돌아다니며, 마음은 서울과 런던을 몇 번씩 왕복하던 새 잠이 들었다. 


시차 극복이 안 된 상태라 새벽에 잠이 깼다. 동네라도 둘러볼까 싶어 대문 밖으로 나섰으나 여름이지만 어둡고 서늘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잠시 걷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 보았다. 핸드폰 개통, 런던 사무소 방문 인사, 바스로 이동, 학교 기숙사에 입성까지 하면 오늘이 마무리될 참이었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긴 후 영국에서의 삶이 축복이 되길 기도했다. 나에게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5년 전 출장으로 잠시 들렀던 런던에서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지하철 구간마다 다소 다른 출근 인파의 옷차림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 뭔가 그들은 일이 있는데 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허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런던 사무소에 도착했다.


인자하신 사무소장님과 이하 사무소 직원분들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이제 공부하느라 고생할 건데 오늘 맛있는 것 사주신다는 말씀에 살살 신이 났다. 런던사무소는 내게 낯선 런던 한 복판에서 있는 서울이었다. 마치 주런던 한국대사관이 우리의 영역이듯이 말이다. 다른 분들이 업무를 보시는 동안 나는 사무소 근처에 있는 통신사 체인점 3군데에 들러 요금제와 혜택을 꼼꼼히 점검한 후 결국 O2에서 핸드폰을 개통했다. 


점심은 Burger & Lobster라는 당시 런던에서 핫하다는 체인에 들렀다. 나중에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런던 여행 오시는 분들이 꼭 들르는 맛집이었다. 랍스터라...? 그런데 주문부터 난관이었다. 대부분 여러 번 와보신 터라 능숙하게 주문하시는데 나는 옆에 분과 같은 걸로 눈치보다 겨우 주문을 마쳤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문제였다. 웨이트리스가 뭔가 아주 긴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설명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현지 채용 직원 한 분뿐이었다. 그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주문이 완료가 되었다. "아.. 여기서 어떻게 살지?" 맘이 무거웠다. 결국 어딘가 가서 능숙하게 모든 걸 다 알아듣고 주문을 마치는 데는 1년이 더 걸렸다. 


런던 맛집 Burger and Lobster (주문에 진을 뺀지라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내가 살아야 할 곳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블랙캡을 잡아 타고 근처 지하철 역으로 갔다. 이민 가방은 결국 바퀴 한쪽이 망가져서 들 듯이 끌어야 했다. 기차를 탈 수 있는 Paddington 역에 도착해서 Bath Spa 역으로 이동하는 기차에 앉고 나서야 식은땀을 닦았다.


런던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 펼쳐진 푸른 초원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내 머릿속에 있는 영국의 이미지는 런던 그 자체인데, 런던을 나가자마자 그런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는 없어지고, 온통 푸른 초원만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구름은 왜 이리 낮게 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조금만 올라가면 손이 닿을 것 같은 느낌은 과장일까?


그런데, 현지에서 알게 된 친구들은 나와 반대의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런던을 표현하기를 "Another Foreign Country"라고 불렀다. 자신들에게 영국은 푸른 잔디밭과 우거진 나무가 가득한 초원인데, 런던은 왠지 어색하다는 것이다. 1시간 반 내내 푸른 초원을 바라보다 결국 Bath Spa 역이 가까워왔다.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젊은 여대생 같이 보이는 친구가 다가왔다. 바스대학교 학생이냐고 물어보길래, 곧 입학할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Are you a Christian?"이었다. 약간 도를 아십니까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좋은 교회를 알고 있는데 한 번 와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영국 현지 교회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유학생들의 따뜻한 안식처였던 Widcombe Baptist Church


다시 연락하자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역에 내렸다. 미리 연락드렸던 같은 과정의 한국인 선배님께서 역 앞에 기다리고 계셨다. 무거운 짐을 기숙사로 실어주시고 학교 캠퍼스를 보여주셨다. 캠퍼스를 둘러보니 "아, 이제 학생으로 다시 돌아온 건가?"라는 느낌이 들면서, 캠퍼스가 주는 편안함이 맘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 되어가길래 어떡하나 하고 있는데, 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자시길래 차에 올라탔다. 한인 선배님이 같은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도가 되는지...  그 날 저녁은 모처럼 따뜻했다.



 

이전 08화 난 자리 만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