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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by Jose




요즘 넷플릭스의 <테라스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한 집에 남녀 6명이 생활하며 벌어지는 일을 리얼리티 예능 형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유치한 면도 있지만, 생전 처음보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일본 문화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되는 듯 합니다. 한국 문화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출연자 중 한 명인 다카가 전에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와 만난 장면이 있었는데, 둘이 나눴던 대화가 참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 대화를 잠깐 소개시켜 드리고 제가 느낀 점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다카 : "비어 가든 때가 그리워"

친구 : "3년 전이었지"

다카 : "열심히 일했었지"

친구 : "3년 전 여름이었지, 엄청나게 힘들었지"

다카 : "힘들었어"

친구 : "그게 바로 청춘이지"

다카 : "즐거웠잖아"

친구 : "즐거웠어"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소리 같지만, 저는 저것이 청춘이 아닐까 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여기서 깨지고, 저기서 깨지는 시기.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시기. 열심히 일하는 시기. 여러 모로 참 힘든 시기. 하지만 그렇게 좌충우돌하는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과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어느 날 불쑥, 혹은 연기가 사라지듯 서서히 자신이란 존재와 목표를 알게 되는 시기, 그렇게 삶의 영역을 조금씩 넓히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시기.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전 처음 푸릇푸릇한 사회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세상에 던져져 좌절하고 실패하며 무릎이 꺾여도 다시 일어설 시간과 기회, 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향하는 목표가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을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저는 그것만큼 맞는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은 아픈 시기가 맞습니다. 청춘은 배고픈 시기가 맞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이제 막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대한 세상 속에 던져져 좌충우돌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청춘이 아프고 배고픈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만큼 잃을 것도 없기에 가족의 생계나 대출금 상환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무거운 걱정없이 친구와 술 한잔하며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한바탕 욕하고 가볍게 훌훌 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청춘들이 '멋지게 늙고 싶다' 말하는 그 멋진 어른들. 그들은 모두 힘들고 아픈 청춘을 지나온 분들입니다. 대부분이 아는 유명인들, 어른으로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이들 대부분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프고 힘든 시기를 경험한 분들입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즐겁고 안락할 순 없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은 대부분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큰 일과 마주할 때, 그것을 극복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일, 회피하고 싶은 일, 하지만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는 곧 진정한 나와 오롯이 마주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의 착각이 부서지고 내가 몰랐던 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내가 이런 점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런 장점이 있는 사람이었구나하고 말이죠. 내가 보고 싶은 모습, 착각 속 내 모습이 아닌 발가벗은 내 진짜 존재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알을 깨는 자기극복의 시작이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알 수 없고, 성숙을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질문합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컴퓨터를 덮고, 집 밖을 나가 무엇이든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당장 돈이 얼마 되지 않아도 무엇이든 하라는 것입니다. 청춘은 돈을 모으는 시기가 아니라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일을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이 하는 일을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거대하고 아픈 경험일수록 내게 값진 무언가를 남기고 떠납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은 그저 사색이나 검색이나 책이나 강연으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바위에 힘껏 부딪쳐 온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 되고, 온전한 나의 것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진짜 추동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을 때 "참 힘들었어", "쉽지 않은 시기였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좋았어", "많은 걸 경험하고 알게 됐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을 발판으로 여전히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청춘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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