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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Sep 11. 2015

어른이 된다는 것

고통은 성숙해진 나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다

        . 

"   ."

          .

어른이 되면 날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다 되갚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감당해야 했기에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었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돌아오는 결과들은 때론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가혹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까지 했다. 

이 세상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  이렇게 힘들게만 느껴지는 걸까.


"나 어린 시절로 돌아갈래!"


이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난에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잃은 채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심각할 만큼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가 우울의 굴레에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꿈꾸던 현실은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도 컸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대로 죽어라 공부해서 명문 대학에 어학연수에 각종 대외활동들까지도 했는데 정작 취업이 안된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현실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타임머신이 실제로 존재했으면 하기까지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돌아가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은데......'


'피터팬 증후군'이란 것이 있다.

어른들이 없는 아이들만의 영원한 나라 네버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 피터팬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치, 자신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현상을 뜻한다. 그 예로 '니트족(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뜻)'이라 불리는 사회 집단이 적절할 듯 싶다.


어린아이는 즉흥적이고 인내심이 적다. 자신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켜야만 한다.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어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밑에서 보호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며 살아갈 수 있다.

피터팬 증후군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욕구들이 숨겨져 있다.

심한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퇴행'하여 몸만 어른이고 마음은 아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퇴행은 무언의 위협으로부터 무의식이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이들에게 바깥 사회가 위협일 뿐이다. 그 위협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마음속에 벽돌로 담을 쌓기 시작하여 현실을 자신과 철저하게 분리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을 만큼 책임들이 그들에겐 너무도 무거웠던 것이다.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다 보면 '조현병' 흔히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퇴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조현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뇌의 기질적 문제, 유전적 문제,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 등 수없이 많이 원인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수없이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하듯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마다 나타나는 증상들 또한 다양하다.


보호사로 근무하던 당시에 한 환자가 있었다. 그 날은 야간 근무였다. 야간 근무 시에 보호사는 환자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병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새벽 2시쯤 되었을 무렵, 그 환자가 잠을 자지 않고 병동 복도를 맨발로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다.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그런 행동을 보여 병실로 안내해주려 하자 환자가 날 멈춰 세우곤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걸어야 달과 지구가 부딪히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계속 걸어야 해요."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나에게 말하던 순간의 표정은 진지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조현병의 증상 중에는 망상과 환청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환자의 행동은 망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환자가 이런 행동을 보일 때 헛소리라며 비난하게 되면 더군다나 야간에 환자가 돌발행동을 하여 병동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면 다른 환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기에 환자를 잘 달래서 잠을 다시 자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제가 대신 걸을 테니 OO님은 피곤하실 텐데 가서 주무세요."


다행히 환자는 수긍하고 병실로 돌아가 다시 잠에 들었다. 이 환자는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그 속에 가두어 살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태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위의 예시는 이미 만성화 양상의 증상을 보이던 환자였기에 안타깝게도 치료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약물치료로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환자의 자각과 노력 없이는 진정한 치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클 때 느끼는 감정을 '권태로움'이라 한다. 

이 권태로움에 깊이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이 무감각해지고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오질 않고 그냥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 삶이 끝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이다. 


누구나 좋은 직장을 갖고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며 살아온 것 아닌가. 그런데 괴리감이 너무도 큰 나머지 권태로움에 빠져버린 것이다. 권태로움은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게 되면 계속 밑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화되지 않는 현실 앞에 무력해진 것이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기력 조차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어른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규칙과 모습 속에서 그것이 현실이라 믿으며 진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다 한들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이 변하진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후지면 후진 모습 그대로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부족하고 못나다 느껴져도 인정하는 것이다. 성공한 삶을 사는 것 같이 느껴지는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만을 놓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히 괜찮고 앞으로 변화될 내 모습을 기대한다!" 



성공의 기준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많은 젊은 청년들이 일찍 취업한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뒤쳐질까 두려워한다. 나와 똑같이 시작했는데 내 동기였던 녀석은 벌써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앞서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이 성공한 삶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흔히 말하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들을 부양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돈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조건'일지는 몰라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돈만 벌 수 있어도 된다. 굶지 않고 작지만 식구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의 집이 있으면 된다. 최소한의 돈에 대한 기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은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만약 풍족한 돈이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이 생기면 생길수록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욕심이란 녀석은 끝이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벌었던 돈이 욕심이란 녀석과 만나 나 자신을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돈이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다.

'고집멸도' : 고통과 집착을 없애기 위해 도를 쌓다.

욕심과 집착은 끊임없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나는 마치 인생의 실패자가 돼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고 이 과정들이 반복되고 지속될수록 세상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게만 느껴진다.


진정한 성공은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스펙들을 쌓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세상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세상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신만의 가치를 가진 이들은 살아가며 만나는 삶의 문제들 속에서 흔들릴 수는 있으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고 타협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과 세상을 맞추며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중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고통들을 경험할 수 있다. 몸에 긁혀서 난 상처와는 비교하지도 못할 만큼의 아픈 경험들을 많이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배워나가며 삶에 적용하는 현명한 삶을 살아간다.


성경구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

그 당시에는 견디지 못할 것 같지만 그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나면 그동안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넓고 따뜻한 들판을 만나게 된다.

체스판에서 체스 말만 보고 게임을 하는 사람과 체스판 전체를 보고 게임하는 사람 중에 전체를 보며 게임을 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 그렇듯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게 가져야 그 모든 과정들을 현명히 헤쳐나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이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스승과도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고통을 이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을 가지는 것이다. 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경험했기에 어떤 강의에서도 배울 수 없는 자신만의 지혜가 생기게 되고 그 지혜를 통해 '어른 아이'에서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 말자.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론 고통스러운 경험이 뒤따를 수 있으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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