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운엽 Dec 31. 2023

해난 사고와 선장의 리더십

  

해상에서 사고는 자주 일어날까? 결론부터 하자면 육상의 차량 충돌사고보다 수만 분의 일도 안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일부러 박으려고 해도 상대편 선박의 항해사들이 졸기 전에는 쉽게 박을 수도 없다. 망망대해에서 어쩌다가 일어나는 선박 충돌사고는 정말 재수 옴 붙은 거라고 표현할 수밖에….


전에 태안 앞바다에서 인천 대교 공사를 마친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무동력선을 예인선이 거제로 끌고 가던 중 기상 악화로 와이어가 끊어졌다. 그래서 정박해 있던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와 충돌하여 12,000여 톤의 원유가 유출되어 온 나라 안이 시끌벅적했다. 항만 당국에서 예인선단의 운항 상태가 의심스러워 두 선박을 비상 호출 채널로 계속 호출하였으나 응답이 없어 충돌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예인선 선장과 '허베이 스피리트' 호의 인도인 선장의 소극적인 피항 조치와 기름 오염에 대한 대응 조치가 부족했다는 책임을 물어 쌍방 과실로 양측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인재였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기름이 이렇게 해상에 유출되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어 어민들의 생계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오염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수십 년에서 우리 세대에서는 결코 회복이 안 될 수도 있단다.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가 알려지자 ‘우리 바다를 살리자’며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학생, 군인, 일반인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연인원 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기름 제거 작업을 묵묵히 계속해서 빠른 시간에 해안의 기름을 대부분 제거하였다.

“생전 처음 겪는 머리 아프고 토할 정도로 역한 원유 냄새가 나는 바닷가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름을 퍼 나르는 모습과 자갈 하나하나를 소중한 보석처럼 닦는 것을 보고 너무도 감동해서 목이 메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어느 자원봉사자의 후일담이다.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에서는 책임을 인정하고 유류 피해 기금으로 삼천억 원을 냈다고 한다.


세계 최대 원유 유출 사건 중 하나로 알려진 알래스카 해상 원유 유출 사건은 어떤가. 알래스카의 발데스 항에서 21만 톤의 원유를 싣고 프린스 윌리엄만을 나오던 '엑손 발데스' 호가 암초에 부딪혔다. 선장은 출항 후 배를 삼항사에게 맡겼다. 삼항사는 빙산을 피하려다 항로를 벗어났고 암초에 충돌하여 배에 구멍이 나 대재앙이 시작됐다. 무려 42,000여 톤의 원유가 바다로 쏟아졌고 청정한 알래스카 해안이 기름으로 뒤덮였다. 이 사고로 바닷새 수십만 마리가 죽었고 돌고래, 물개 등 해양 동물과 어류의 희생은 집계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엑손사는 그 후 몇 년 동안 기름 제거 작업에만 25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해양 오염 사고 중 최악의 하나인 '엑손 발데스' 호의 눈에 보이는 피해가 대충 그 정도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생태계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건 후로 유조선에 대해 이중 선체 구조가 의무화되었다.


그러면 나는 십 년 넘게 배를 타면서 해난 사고를 직접 겪은 적이 있었나? 대답은 ‘전혀 없었다.’이고 다른 배들이 부딪친 것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글쓴이가 미국 TEEKAY사의 유조선 'OPPAMA SPIRIT' 호를 탈 때 그 회사 소속선인 'OSHIMA SPIRIT' 호가 인도양에서 필리핀 화물선과 충돌한 사고는 들은 적이 있다. 일항사 당직 교대 시간인 새벽 네 시경에 발생한 사고로 선수가 깨지면서 앵커가 한 바다로 쏟아져 내려 자력으로 항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싱가포르로 예인해 독에서 수리하는 등 선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 바람에 창업주 토벤 칼쇼 회장의 부인이 재일교포라 40여 척의 TK Tanker 선단을 일 잘하는 한국인 선원들로 차츰 바꾸려던 계획이 무산되어 급료 좋던 일자리를 한꺼번에 잃은 적이 있었다. 해상에서 선박 충돌 사고는 항해가 통제 안 되는 악천후나 조타 장비, 기관 고장 아니면 좀체 일어나지 않는 건데 선주 측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은 300여 명이 사망, 실종된 대형 참사이다. 특히 수학여행 가던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아 사회적 충격이 엄청났다. 선주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선체를 무리하게 증, 개축했고 운항 과실과 해당 관청은 안전 점검 등을 소홀히 해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 선박이 침몰하는데도 초동 대응과 현장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 '타이태닉' 호 침몰 사고에서는 배의 침몰이 확실시된 후에 승객들을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는데 세월호에서는 승객들을 대책 없이 객실에 머물게 해 인명 피해가 더 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외신은 겁에 질린 승객을 본체만체고 먼저 탈출한 선장을 '세월호의 악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탈리아의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꽁꼬르디아' 호가 좌초했을 때도 선장이 사천여 명의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도망간 적이 있다. 해안경비대장은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 승객 구조를 지휘하라고 명령한 녹취록이 공개되어 선장은 감방에 가고 경비대장은 영웅이 되었다.


만일 배가 난파되어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선장은 승객과 승조원을 안전하게 탈출시키고 가장 마지막에 배를 떠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선장의 책임감과 영웅적 리더십으로 '타이태닉' 호와 운명을 같이한 스미스 선장은 당대 최고 선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전통을 남겼다. 그를 기리는 동상에는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라는 문구를 새겼다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인답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최고 통수권자였던 분이 군함 순시 때 선교의 함장 자리에는 대통령도 앉지 않는다는 전통을 만들었다. 전 승조원과 승객의 생사를 책임지는 선장을 최고로 예우하는 전통을 만든 것은 아주 잘한 거로 생각한다. 어느 영화를 보니 미국 대통령이 테러를 피해 비행기를 옮겨타니 그 순간 에어포스 원이 바뀌더라. 미합중국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군인, 경찰, 소방관 등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문화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전에 한 해군 제독이 야간 항해 중에 한잔 걸치고 선교에 올라갔더니 정면에 불빛이 보여 길을 비키라고 했단다. 앞의 불빛이 ‘당신이 비켜야지.’라고 발광 신호를 보내와서 그 제독이 화가 나 ‘건방진 것이 나 제독이다, 니가 비켜.’ 하면서 성질을 버럭 냈다나. 그랬더니 앞에서 ‘나 등대거든요.’ 했다던가.

작가의 이전글 남희야, 드디어 독일 간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