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시에 심취하여
집 앞 놀이터에도 아이처럼 글을 새겼다
늦은 점심으로 먹은
라면의 국물 속에서도
하나의 시어를 기어코 건져 올리는
탁월한 낚시꾼이 된 것이다
시는 깊고 깊은 바다 표면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고 기다리는 것과 같다
원하는 것을 기다리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아 애태운다
잠들기 전 뒤척이다가
문득 우리는 동네 뒷산으로 걸어 올라가
열대우림을 거쳐 자동문으로 나와 헤어졌다는
문장이 떠올라 오랫동안 끌어안았다
이 문장이 왜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니, 그날 떠오른 달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러서야
반나절이 지나 다시금 곱씹어본다
시는 쓰기보다 지우는 게 많다는데
나는 밥그릇의 밥풀 한 개도 덜어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