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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숙 라라조이 Apr 11. 2021

남산 소릿길

남산과 나

내가 자주 가는 남산 길목에 터널이 있다.


나는 이 터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저 너머 밝은 빛이 보이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때론 이상한 음향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거슬린다. 어떤 때는 타자 소리, 어떤 때는 발자국 소리, 또 철문 소리 등 그 소리가 들릴 때 터널을 걸어가면 묘한 느낌이 든다.



안내판을 살펴보니 그것이 다 다른 버전이 아닌 하나의 소리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불편함으로 온몸이 저려온다.


내가 직장을 다닌 이듬해.

청명한 가을,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나와 직장 동료 몇은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혐의는 간첩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 점.


아직도 그 후미진 골목에 검은 승용차들이 쭈욱  줄 서서 서 있던 풍경이 나에겐 하나의 상징처럼 떠오른다.

한 차에 한 명씩.

운전수와 뒤에 탄 내 옆에 수사관이 있었다. 두 팔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치마를 입은 내 무릎 사이로 눈 감고 머리 박아를 하고서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그때까지도 아직 패기가 있던 나는 '어, 여긴 로터리, 아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구나, 여긴 시내인데, 청계천이구나!' 하면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려 했다. 그리고 어릴 때 추리소설을 좋아했었던 것을 스스로 뿌듯하게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로터리 같은 곳에서 뺑뺑 돈다 싶었을 때 난 방향감각을 잃었다.


그리곤 회색 건물.

밖에서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

낮게 가림막만 쳐져 있는 변기, 누군가 여기서 샤워를 했을 것 같지 않은 욕조.

나무 책상. 거기서 묻고, 말하고, 쓰고, 쓰고, 쓰고....

잠자지 않고 이틀을 쓰고, 쓰고, 쓰고....


차는 올 때와 똑같이 눈감고 머리 박아를 하고 있는 나를 예고도 없이 버리듯 차 문을 열고 밀어내었다.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 둘러보니 광화문 새문안 교회 앞쯤이었다.

나는 어쩌지. 나는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버려진 것처럼. 그때의 스산함이란. 아마도 가을이었으니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지. 추웠을 수도 있지.


우리가 돌아와 오랫동안 말이 없던 때, 간첩 혐의로 붙잡혀 간 동료는 1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우리는 교육에 대하여 책을 읽으며 짜장면을 먹곤 하였는데, 그리고 대부분 청춘 남녀라서 떠들고 논 것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데도 모두 붙잡혀 갔다.


붙잡혀 간 동료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 간첩은?

1년 감옥을 산 후에 나라는 그를 다시 얌전히 직장에 복직시켜주었다.

'미안해.'라고 말이나 했는지.


남산의 소릿길을 걸을 때 들리는 철문 소리, 타자 소리, 발자국 소리는 얼핏 그때를 상기시켜 준다.


이 터널 가기 전 현재 서울 유스호스텔 자리는 전 중앙정보부 본관 자리라 하고, 이 터널을 나가면 바로 있는 현재 서울시청 남산별관은 예전 대공수사국으로 지하에 조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소릿길을 만든 의도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남산에서 오랫동안 모르게 벌어진 일들에 대한 사과일까?


나는 그저 이 터널에서 조용히 걷고 싶다. 아니면 그저 잔잔한 음악만이 흘러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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