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올라왔던 남산 팔각정. 어린이날 친구와 왔다 식중독이 걸렸던 남산 어린이회관. 재수할 때 가끔 답답한 가슴을 쉬러 왔던 남산 공원. 학창 시절 다녔던 남산 도서관. 친구와 거닐며 대화를 나눴던 남산 분수대와 남산 식물원. 연애할 때 오르고 내렸던 남산 계단. 어린 딸을 데리고 탔던 남산 케이블카. 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화가가 앉아 있던 남산 꼭대기 오르막 계단. 돈가스를 먹었던 남산 전망대 레스토랑.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함께 걷는 남산 산책로. 그리고 엄마 나무.
있다가 없어지면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은 크다. 어떻게 크다고 표현해야 하나 한참을 찾았으나 모르겠고 그냥 엄청 크다.
내 곁에 있는 것들.
때론 나를 떠나가기도 하지만, 늘 그대로 곁에 있는 것들을 지그시 바라본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그대로 있을 수가 있을까? 신기하다.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는 남산 커피 트럭.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본 남산 팔각정. 남산에서 바라본 관악산 정상의 불꽃 모양 봉우리. 늘 바라보며 미세먼지 정도를 측정하던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의 능선이 보이던 북쪽 산책로 전망대.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다가 이맘때 되면 피어나 '개나리인가?'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영춘화. 지금 막 개화를 장전하고 있는 목련. 산수유... 그리고 좀 천천히 깨어날 벚꽃, 푸른 녹음, 초록이 지쳐 들 단풍, 그 위에 살포시 내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