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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숙 라라조이 Apr 11. 2021

언어의 유희

남산과 나

< 오늘의 단어 >


남산을 걸으며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았다.

"개나리는 '나리'라는 말에 '개'가 붙은 건데, 진달래도 '달래'라는 말에 '진'이 붙은 건가?"

하고 대화하다가 참 언어라는 것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 그녀의 이름은? >


얼마 전 남편은 늘 가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이번 커트를 아주 맘에 들어했다. 그래서 그 헤어 디자이너의 이름을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에도 그 사람에게 커트를 하고 싶다고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남편은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유명 연예인 얼굴도 헷갈려서 전혀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이지?'하고 말해서 기가 막혀하곤 했다. 그래서 얼굴로 다시 기억해 낸다는 건 어렵다.


"안녕하세요. 제가 저번에 거기서 머리를 잘랐는데....."

"....... 이름을 알고 싶은데.......... '설사'요?"

한다.


나는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풉' 하고 웃었다. '설마 사람 이름이 '설사'겠어?'

그쪽에서 아니라고 하나보다.


"선사요?"

또 아니라고 하나보다.

"죄송하지만 앞부분이 뭉개져서 잘 못 들었습니다."

"아! '눈 설'자, 설이요?"

"설사?"

또 한 번 외치는 것이다.

그쪽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

"아! '설화'요!"


미친다.


남의 '눈꽃'처럼 예쁜 디자이너 이름을 '설사'라고 하다니....



< 커피 체인점의 닉네임 >


커피 체인점에 가면 커피에 닉네임을 표시하여 구분해 주기도 한다. 언젠가 커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삐약삐약 병아리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한다. 돌아보니 푸근하게 생긴 아저씨가 찾아가는 것이었다.


'좋은데, 임팩트 있고!' 언젠가는 '마징가 Z고객님!'도 있었다. 찾아보니 부르기 힘들게 '경찰청철창살'고객님, '받자마자쏟을'고객님, '친구없는'고객님 등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남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가 아니면 귀엽다고 생각한다. 조금 골탕인가? 유머인가?



< 요즘 신경 쓰이는 언어들 >


'사회적 거리두기'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서로 손도 못 잡고 발로 치며 인사하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몇 마디 안부를 묻곤 이내 헤어진다. 이러면 이것은 '우연적 접촉하기'인가?


'포비아', 'phobia', '공포'


사실 요즈음 다각도의 뉴스로 어지럽다. 'n번방'에 대하여 읽다가 머리가 아팠다.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공포와 피 말림을 생각하다 공감을 넘어서 아팠다. 많이.


언어와 감정과 신체는 다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너무 몰입될 때,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


많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 나도 살아야겠어서 그 뉴스를 외면한다.



< 다시 사전 찾아보기 >


개 : 접사

  1.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떡, 개살구, 개철쭉

  2.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꿈, 개수작, 개죽음

  3.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망나니, 개잡놈

                                                    <표준국어대사전>



오늘은 3번의 '예'가 눈에 화악 들어온다.


내가 늘 주장하던 얘기. 욕은 안 써야 하는 나쁜 말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꼭 맞는 욕을 골라 쓰는 것이 '올바른 언어생활'이라고!


아주 아주 나쁜 놈한테 좀 약한 욕을 쓰는 건 실례이다.



< 다시 기분전환 >


딸이 말한다.

"엄마는 남산을 좋아해."

"어, 나 남산 좋아."

"엄마는 남진 좋아하잖아."

"어, 남진 좋아."

"그러면 엄마는 '남'자 들어가는 걸 좋아하네."

"그러네, 내가 좋아하는 건....

남산,

남진,

남자,

남일,

남은 거,

남한,

.

.

."


이러다 '대한민국 만세' 부르겠다.


늘 아름다운 언어들이 뉴스에 나오고,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앗, 지금 TV에 '임영웅'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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