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여름밤의 꿈

동네북카페에서 독서모임 후.

by 예정


한낮의 햇볕이 뜨겁다.

한동안 일교차가 심해서 아이들이 차례로 목감기에 걸리고, 병원을 다녔었는데

이제는 교실에서 에어컨을 틀기 시작해서 목감기가 유행이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냉랭한 기운이 사라졌다.

수돗물을 틀어도 차가운 물이 시리게 느껴지지 않는다.

계절이 지나고 있다. 여름이 오고 있다.

산책길마다 그늘이 생겼다.

나뭇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은 바람 따라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햇빛과 그늘 사이로 걷는 기분이 꽤 상쾌하고 좋아서 점심을 먹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우리 동네 작은 공원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자연을 관찰하기에 좋고,

하천을 잇는 산책로로 저녁까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땀이 스며 나와 끈끈해지는 피부, 강렬한 햇빛에 그을릴 것 같아서 양산이 생각나는 오후.

바람의 온도가 점점 달아오르는 느낌.. 파란 하늘과 산과 수목의 짙어진 녹음이 여름이라고 말해준다.

여유로운 휴일에 혼자 시원한 서리태콩국수도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동네카페를 다시 기웃거렸다.




1년 내내 지나가면서 유리창으로 기웃거린 적은 많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곳.

우리 동네 북카페, ‘8월의 크리스마스’

밖에서 보았을 땐 책이 아주 많아 보였고, 널찍한 공간에 손님이 없어 보여서 혼자 오래 머물기 부담스러워서 들어가지 못했었다.

오래된 책들이 많은 줄 알았는데, 곳곳에 신간들과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이 발견되고,

가로로 쌓여있어서 다 들춰보지 못한 시집들과 다양한 그림책들, 세계문학전집들과 한국문학전집..

그리고 정확히 분류되어 짜임새 있게 놓인 것 같진 않지만 주인장의 성향이지 않을까 싶은 책의 진열방식이었다.

동네책방 다음으로 운영해보고 싶었던 것이 북카페라서, 천천히 관찰을 해보았는데..

내가 주인장이라면 어떻게 진열을 했을까, 나라면 돋보이게 두고 싶었을 책들을 구석에서 발견하면서

혼자 이런저런 다른 그림들을 그려보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테이블과 의자.

가져온 책이 없었다면 집어 들고 한참 읽어보고 싶은 책들.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기에도 좋겠고, 독서모임을 해도 좋을 것 같은 공간.. 조금은 내 꿈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이곳.

그래서 저녁에 남편과 다시 찾아갔다.



오늘은 독서모임 네 번째 날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마무리하고, 읽은 소감과 쟁점에 대한 토론과 우리가 바뀌어야 할 부분을 나누었다.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읽어보게 된 ‘오염된 정의’도 참 좋았고. 남편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도 함께 읽었다.

거미줄처럼 한 책을 시작으로 연결되는 여러 책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되고, (절대적으로) 내 생각이 옳고 틀릴 리가 없다는 오만에서 벗어난다.

독서의 영역이 넓어지고, 여러 방면으로 사고가 확장되고, 보지 못한 부분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

책을 읽는 것은 보이지 않게 머무는 자리를 뒤흔들고, 시선을 뒤집고, 삶의 방향을 1각씩 틀어간다.

그런 경험이 내게는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때로 찢어지게 아프지만,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참 의미 있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남편과 계속 독서모임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반려자와 함께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다음 책은 남편이 골랐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책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리하거나, 발제하는 등의 수고는 하지 않기로 했고,

책 선정에도 두 사람의 의견이나 추천을 맞추어서 해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새로운 멤버가 영입된다면, 또 방향을 조금씩 조절해 가면 되겠지.


남편도 오늘의 카페가 매우 탐난다고 했다. 위치도 집 근처라서 좋고, 공간도 딱 좋고…(남의 가게에서 무슨 꿍꿍이를ㅋㅋ)

시댁에 더부살이 중인 책을 다 가져오면 자기 책이 이만큼은 될 거라고.. 자기 나름의 큐레이션을 꿈꾸는 듯하다.

우리의 미래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흐뭇하고 행복해졌다.

(꿈은 꿀 수 있잖아요?ㅎㅎ)


책을 읽고, 계절을 느끼면서 다가올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밤은 참 좋았더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