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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동료의 선물

레이오프의 후폭풍

by Joyce


몇 달 전,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는 갑작스러운 레이오프를 진행했다. 내가 소속된 팀의 일부 동료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남은 사람들 중 몇몇은 파트타임으로 전환되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흔들린 우리는 모두 불안해했고, 각자의 다음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한 달쯤 지나서, 파트타임으로 전환되었던 동료들 중 일부가 다시 풀타임으로 돌아왔다.(몇 달이 지난 지금 우리 팀은 이직으로 퇴사한 직원들을 제외하고 전체가 풀타임으로 복귀했다...) 회사의 이상한 결정에 모두가 갸웃했는데, 대표의 말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한 레이오프였고, 한 달이 지나서 추가적인 성과를 입증해 파트타임 직원들을 풀타임으로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달 안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은 아니고 계약이 확정된 건들이 늘어난 것인데, 사실 계약에 대한 밑작업은 레이오프 한참 전에 하고 있었던 것이니, 투자자들을 한 달만 더 기다려달라고 설득했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회사의 C 레벨들의 태도였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다”라는 말과 태도.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 레이오프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모를 수는 없다.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는 결국 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팀 간의 협업보다 개인의 성과만을 드러내야 살아남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누군들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효용성을 명확한 성취로 보여주지 못하면 내보내지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C레벨의 결정이었다. 특히 인공지능 연구나 내부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던 동료들이 레이오프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진짜 문제는 레이오프 후에 발생했다. 다시 풀타임으로 전환 오퍼를 받은 일부 동료들이 돌아왔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두 달 남짓 시간이 흐르자 이직으로 이어졌다. 레이오프의 상처는 너무 컸고,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던 것이다.

두 달에 걸쳐서 이직으로 회사를 떠난 엔지니어만 벌써 6명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와 회사에서 가장 가까웠던 동료 A도 결국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레이오프 당시 파트타임으로 전환되었다가 한 달 만에 복귀했지만, 그 사이 겪었던 마음고생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직은 진심으로 너무 기쁜 소식이었다. A가 떠나게 되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당연히 본인의 가치를 더 알아주는 곳으로 마땅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A의 퇴직 뉴스에 갑자기 매니저는 이제 와서 마지막까지 그를 붙잡으려 바빠졌다. 그를 붙잡아 보려고 연봉을 올려주고, 베네핏도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A는 본인의 마음을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답했다.


A의 이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직접 전해 들었는데, 그의 이직은 몇 달 전의 레이오프의 결과가 맞았다. 파트타임으로 전환이 된 후에, 레이오프 된 다른 직원들과 회사 외적으로 연락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레이오프 된 직원들을 통해 다른 회사에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고, 결국 더 좋은 오퍼를 받게 되었다.



A와 나는 회사가 시리즈 A 투자를 받기 조금 전, 한 달 차이로 입사했다. 투자 초기에는 갑작스럽게 잡히는 데모와 투자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밤샘이 잦았다. 연봉제라 야근 수당은 없었지만, 스톡옵션이라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 터무니없는 요구들이 쏟아져도, 불평 대신 함께 웃으며 버텼다. 그렇게 4년을 함께하다 보니,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 A가 떠난다고 했을 때,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먼저였다. 더 좋은 곳에서 그의 가치를 알아봐 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은 허전했다. 함께 달려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A는 내가 출산 휴가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유일한 회사 동료였는데, 퇴직하기 전에 줌(Zoom)에서 일대일로 미팅을 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출산 휴가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 거라는 말을 했다. 퇴사를 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사과에서 퇴사 인터뷰라는 것을 진행했는데, 그 인터뷰 중에 떠나는 A에게 '너는 떠나지 말라고 잡지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엔지니어들을 회사에 더 오래 근무할 수 있게 할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국 회사 베네핏을 더 줘야 한다는 식으로 A가 전달을 했던 것이다.



그 말 덕분이었을까. A가 떠나고 며칠 후 매니저가 일대일 미팅을 잡았다. 미팅에 들어가니, 갑자기 '혹시 회사 생활에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냐', '어떤 것들이 해결되면 회사 생활이 좀 더 편할 것 같냐' 등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이미 출산 휴가에 대한 고민으로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회사에는 '보장'하는 출산 휴가 제도가 없는 상황이고(이런 게 스타트업의 단점인 것 같다...), 내가 네고와 합의를 통해 출산 휴가에 대한 모든 것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불만 없다(불만이 있어도 없다고 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매니저는 뜻밖에도 나에게 연봉 인상 소식을 전했다.

레이오프 이후엔 연봉 인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놀라웠다. 출산 휴가 얘기를 먼저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실제로 회사는 매년 연봉인상을 해주는 대신, 새로운 투자 시리즈가 시작될 때 조금 크게 올려주는 방식으로 여태까지 연봉인상을 대해왔다. 그런데 이번 연봉 인상은 새로운 투자 시리즈를 시작할 때 주던 인상보다도 더 컸다. 작년엔 연봉인상이 없어도 괜찮으니 휴가 며칠만 더 달라고 했을 때도 거절하더니...


역시 회사에서의 네고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가....


나는 그 미팅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출산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도, 매니저는 본인도 늦은 나이에 어렵게 아이를 얻었다며, 나의 고민을 쉽게 이해해 주었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니 야근하지 말라고 하면서 건강을 잘 챙기라는 당부까지 받고 미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출산 휴가 결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결재까지 한 걸음을 뗀 격이니, 속으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연봉 인상도 감사했지만, A가 남겨준 말 덕분에 내가 조금 더 안전한 환경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A는 지금 새로운 회사에서 바쁘게 적응 중이다. 가끔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전해오지만, 언젠가 또 다른 자리에서 마주칠 날이 있겠지.


돌아보면, 그의 이직은 몇 달 전 레이오프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떠나는 동료가 남긴 진짜 선물은, 새로운 기회를 향해 떠나는 용기와, 남은 나를 위한 배려였다.


언젠가 나 역시 내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오겠지. 두렵지만, 그 순간이 오면 나 또한 용기 있게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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