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m였던 흉선종은 10cm로
수술 후 이동한 중환자실은 입원하고 있었던 암병동과는 또 다르게 조금은 더 무겁고 낯선 분위기였다. 수술을 잘 마쳤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나의 중증근무력증 증상이 다시 심각해지는 바람에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은 많이 고통스러웠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최소한 흉선종은 잘 제거되었을 것이고 분명 그것은 나에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으며, 그때의 나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 우선은 이겨내야 할 어려움들이 조금 더 남아있나 보다 싶었다. 주어진 이 시간 끝에 건강회복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불평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 보겠다라고 생각했다.
바라는 어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많은 과정 속에 때로는 장애물 같은 시간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평탄하고 쉬운 길이 허락될 때가 있지만, 유난히 모나고 마르고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실은 더 많은 듯하다. 나에게는 시험을 여러 번 떨어진 시간이 그러했고, 이 병들을 만나 투병하는 시간도 그랬다.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도, 수술직후의 회복도, 그리고 온전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도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고난이라고 이름 붙이려 할지 모르겠지만, 그 길을 걸어오는 동안 감사한 일들이 끝없이 쌓여왔음을 나는 이 글을 쓰며 또 한 번 더 깨닫는다. 앞으로도 나는 내 삶 속에서 슬픔과 절망에 먼저 반응하기보다는, 허락되는 감사한 순간들을 먼저 찾아내고 하나하나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중환자실에서 5일
저녁 7시 수술을 마친 후 긴 대기시간을 거쳐 중환자실 입원실에 배정받은 나는, 밤 11시가 가까워질 때쯤 잠을 청했다. 그날밤은 수술한 곳의 고통을 참아보았다가, 간호사에게 부탁해 마취약을 더해보기도 하는 등, 통증을 이겨내고자 이리저리 뒤척이며 새벽을 보내었다. 수술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준 가족들도 너무 수고로운 하루를 보냈을 텐데 여동생은 힘든 몸으로 내 옆을 지키며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해가 뜨고 수술이 진행된 몸의 측면으로 긴 호스들이 달려있는 것을 보면서 수술을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런데 수술은 분명 잘되었지만 몸 근육의 무력함도 더 커졌고, 무엇보다 조금 나아지나 싶었던 호흡곤란이 다시 찾아왔다. 몸을 째어내어 수술을 한 것이 고통을 주는 것도 있었겠지만, 의사들의 예상대로 급격히 약해진 내 몸이 수술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히 많이 지친 이유였다. 2달이 채 되지 않는 투병시간 동안 나는 10 킬로그램 이상의 몸무게가 빠질 만큼 약해졌기에, 투병의 시간과 수술이라는 과정은 몸에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속상하게도 목 안이 이유 없이 점점 붓기 시작하는 그 어둡고 기분 나쁜 느낌이 다시 점점 커져왔다. 일시적으로 몸이 약해져서 호흡곤란증세가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중증근무력증을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사들도 예의주시해 지켜보았다. 돌아보면 나는 이때 가장 예민하고 힘들었던 듯하다. 혹시라도 내가 건강한때로 돌아가지 못하는 50%의 확률이 현실이 될까 봐 마음을 많이 졸였다. 하필 또 중증근무력증을 더 악화시키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수액을 병원이 실수로 나에게 주입하고 있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만큼 이병은 희귀병이라서 의료진들에게도 낯설었으리라, 이해를 해보려 노력했다.
호흡곤란과 함께, 나는 폐렴이 올만큼 심각한 기침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하느라 잠들지 못하는 시간으로 돌아갔다. 몸의 무력함때문에 연하장애가 다시 심각해졌고, 다리에 힘이 없어 여전히 걷지 못했던 나는 이제는 팔에도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가슴에는 심장박동과 맥박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자 많은 줄들이 달려있었다. 이미 한 달 넘게 내 옆에서 간호하시는 엄마는 체력에 한계가 오셨을 텐데 환자옆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시며 24시간 나를 지키고 계셨다. 나는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신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고 온몸이 예민해진 나는 팔과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있는 줄들이 내 피부 위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져 떼어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았다.
너무도 기다렸던 퇴원일
우선은 흉선종이 잘 제거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수술 후 약해진 체력을 돋우며 충분히 휴식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버티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며칠이 더해졌다. 너무 감사하게도 중환자실에서 5일을 보내었던 시점 급격하게 나빠졌던 호흡곤란증세와 기침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했던 나에게 병원은 드디어 퇴원을 허락해 주었다. 퇴원 후 돌아온 우리 집 앞의 풍성했던 가로수 나무들은, 일주일사이 짧게 가지를 치고 단출해진 느낌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지쳐있는 나였지만 나는 수술 때 발견된 기적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집도의의 말씀에 의하면 나의 흉선종은 삼지창처럼 자라나고 있었던 듯하다. 뾰족뾰족 아주 무섭고 못난 모양으로 길쭉길쭉 뻗어가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발견한 혹이 그 당시 5cm 남짓이었는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수술당시 약 10cm로 두 배가 자라나 있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 컸다면 로봇수술이 불가능했을 텐데, 나는 너무 다행히도 - 아슬아슬하게 로봇수술이 가능한 크기일 때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로봇수술은 나의 옆구리 쪽에서 절개 후 진행되어 지금은 작은 흉터로만 남아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은 이렇게 빨리 큰 흉선종이 다른 장기를 침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삐쭉삐쭉 무섭게 자라는 와중에도, 1mm를 남기고 다른 장기를 파고들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다. 수술이 조금만 더 늦게 진행되었다면 나의 상황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흉선종을 성공리에 제거한 만큼 나의 중증근무력증의 증상들도 깨끗이 사라지기를 나는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기도의 힘을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