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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shin Aug 09. 2024

부겐베리아(Bougainvillea)

처음 만난 꽃과 지킨 약속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나의 첫 꽃은 부겐베리아였다. 미국에 유학 처음으로 간 교회 앞마당에 이름도 모르는 붉은 덩굴 꽃나무가 낯설어 쭈삣대는 나를 환영해 주었다. 지나고 보니 하늘높이 쭉쭉 뻗어 올라간 팜츄리와 함께 캘리포니아를 캘리포니아스럽게 해 주는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나무이다.



남아메리카 원산이라고도하고 아프리카 원산이라고도 한다.  정열과 사랑의 꽃말을 가진 이 꽃은 Paper flower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빨간색, 진홍색, 분홍색, 연분홍색, 살구색, 노란색, 연두색, 미색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을 갖고 있는 덩굴과 식물이다. 사실 이 꽃들은 꽃이 아닌 꽃싸개이고, 앙징맞은 하얀 꽃술 같아 보이는 것들이 진짜꽃이다. 이를 진작에 알면서도 여전히 꽃싸개들이 꽃으로 보이는 건  나뿐만은 아닐 듯싶다.  



나중에 집을 사게되면 담장을 이 꽃나무로 둘러야겠다고 그때 생각했다. 벌써 26년 전 일이다. 부겐베리아에 대한 첫 감동과 약속을 기억하며 결혼하면서부터  가끔씩 대소사 있을 때 기념하는 마음으로 10불에서 20불 상당의 작은 부겐베리아 화분을 사서 월세 아파트 이사 다닐 적마다 끌고 다녔다. 물주는 일을 좀 걸러도 괜찮고, 뜨거운 햇빛, 병충해등 웬만해선 죽지 않는 이 꽃나무를 이민생활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다섯개 중 개가 죽고 나머지 개를 지금껏 키우고 있다. 5년전 뒤늦게 마련한 작은 타운홈 패티오 담장에 개의 부겐베리아가 둘러져 있다. 흙마당 없는 집 화분 속에서 답답히 살아왔지만 세월덕에 뿌리가 커져 큰 화분으로 몇 차례 분갈이했고, 실하진 않아도 이제껏 살아 버팅기뻣어나가 준 가지덕에 썰렁한 담벼락이 조금이나마 채워졌다. 매해 피고 지는 꽃에 고맙고 월이 되면 더더욱 만개하여 오월 아침 화단에 물 주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라일락, 벚꽃, 목련, 아카시아...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처럼 보이지 않으니 서로간에 잊혀지는 그 이름들, 생각하면 아쉬운 그 이름들이 아련한 자리에 첫 친구 부겐베리아시공간의 공백을 메꾸어주며, 각종 선인장, 극락조, 히야신스, 아이리스, 수국, 장미들도 자신들도 보아달라고 칭얼댄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레몬나무 하나면 충분했다. 오래간만에 부겐베리아 하나 더 들이는 호사스러운 삶을 누려볼까.  30불의 플렉스.



내년 월이 벌써 기다려진다. 부겐베리아 꽃가지 높이가 그때는 담장 끝을 넘었을까. 새로 들인 부겐베리아는 어디에 자기 자리를 잡았을까. 이제는 오래된 식구가 되어 이일 저일 다 견뎌내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26년 전 교회 마당 앞에서  커다란 느티나무만한 이 붉은 정열의 꽃 앞에서 찍었던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그만큼 크게 키우진 못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만난꽃과 한 그 약속을 어느새 지키며,  하늘 아래서 아담한 나의 첫사랑  부겐베리아와들과 함께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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