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은 멋은 없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도 나도 그 시절의 패피였다.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사고도 수선집을 찾았다. 발목 둘레 7.5센티에 맞춰서 바지통을 줄이고 나면 발이 겨우 들어가서 외출 후에는 뒤집어서 벗어야 옷에서 해방되곤 했다. 이제 서로의 주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쇼핑을 갔다.
예전만 한 열정은 아니라도 거리에 즐비한 옷집을 한 집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본 후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집에 오자마자 거울 앞에서 새로 산 옷을 꺼내니 친구가 놀란 얼굴을 한다.
“피곤하지 않아? 지금 옷을 왜 입어?”
“입어봐야지 어떤 옷이랑 어울리게 입을지 알지.”
“그걸 지금 해? 피곤한데 쉬고 다음에 하지?”
나는 새로 사 온 옷을 그냥 옷걸이에 걸어 둔 일이 없다. 새로 산 옷이 원래 있던 내 옷들과 어떻게 어울릴지 바로 확인한다. 먼저 옷을 살 때부터 맞춰 입으려고 마음에 찜해둔 옷과 입어본다. 그리고 다른 느낌의 옷들과도 매치해 본다.
이번에 산 옷은 도톰한 면소재의 스커트여서 질감이 어울리는 옷을 먼저 찾아본다.
색깔의 조화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흰색이어서 웬만한 색은 다 어울릴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창백한 백열등색인지 베이지 품은 따뜻한 흰색인지에 따라 어울림이 다르다. 몇 가지 옷을 더 입어본 다음에야 옷을 벗어 걸어두었다.
그러는 동안 친구는 의자에 앉아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 옷 입었다, 저 옷 입었다 하는 나를 보다 말했다.
" 피곤할 텐데, 지치지도 않는구나. 네가 이렇게 하니 멋쟁이가 되는구나, 나는 나중에 입어보려고 그냥 넣어두는데"
아니다. 나도 피곤하고 지친다. 그러나 옷을 샀으니 코디는 필수다.
그도 사 온 그날 바로. 나중에 따로 코디할 시간은 없다. 그냥 넣어 두면 그냥 입게 된다.
‘꾸안꾸’는 그냥 툭 걸쳐도 멋있는 패션에 대한 로망이 묻어있는 단어이다.
후드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져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꾸안꾸’하러면 먼저 ‘꾸꾸꾸’부터 해야 한다.
'꾸미고 또 꾸미며' 애쓰는 시간을 지나야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멋'이 난다.
영화배우 강동원에게 옷을 어떻게 잘 입느냐고 물으면 “옷을 많이 입어봐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간결하지만 더 이상의 비결은 없다. 많이 입어보면 잘 입게 된다.
우리가 보는 멋쟁이들은 거울 앞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입고 벗고 코디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치열한 자기 탐구 끝에 자기만의 아우라를 가진 사람들이다. 거울 앞에서 애쓰며 보낸 시간만큼 나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며 살아간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그토록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선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일이 고단하고 쓸쓸하지만, 애쓰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애를 쓰고 노력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여 축적이 되면 언젠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산이 된다.
*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여도 애쓰지 않은 멋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