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넘어 다른 삶을 타진해 볼 것
한 동안 옷장 가득한 옷을 두고도 출근이나 외출 시에는 늘 비슷한 옷만 입고 다녔었다.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어제와 비슷한 옷에 다시 몸을 밀어 넣곤 했다.
그러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카디건에 눈이 갔다.
파란색 스팽글의 선명한 색깔과 손 안에서 찰랑거리는 차가운 금속 느낌이 좋아 망설임 없이 구입한 옷이다. 목이 파진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이 반짝이 스팽글 카디건을 입으면 멋진 룩이 완성된다. 그런데 막상 이 옷을 입고 나간 적은 없었다. 어찌 보면 클럽의 사이키 조명 같기도 하고 인어공주의 비늘 같기도 해서 출근은 엄두도 못 내겠고,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분명히 입고 싶어서 산 옷들인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옷걸이에 걸려 혼자 늙어가는 옷을 보며, 입지 않을 바에야 이 많은 옷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그냥 입고 백화점으로 갔다.
해외 컨템퍼러리 편집샵이나 대중적이지 않은 해외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백화점은 노멀 하지 않은 옷도 묻히게 되는 힘이 있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쇼핑하느라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새로운 내 모습에 익숙해졌다. 집에 돌아와 카디건을 옷걸이 걸며 그날 새로운 모습은 오로지 '나 한정판 새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에게 나는 그냥 타인일 뿐이었다.
무슨 옷을 입고 살겠다는 것은 죽고 살고를 결정하는 심각한 일이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해보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는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라는 말에 대해 마치 번지점프대 위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내디딘 한 발이 열어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있다면 이제 나는 눈 딱 감고 발을 내디뎌 본다.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마음을 먹게 되기까지 수많은 망설임과 포기가 있었지만, 결국 해버리고 나면 시원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 해방감은 내가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만족감에서 왔다.
새로운 시도는 작고 가볍게 시작할수록 좋다. 투자 비용이 높을수록 선택은 신중해지고 모험은 회피하게 된다. 옷 값이 비쌀수록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신중해지고 그동안 자신에게 어울리고 검증된 스타일로 구입하게 된다. 반면에 옷값이 싸면 부담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어울리지 않아서 실패한다 해도 크게 아깝지 않을 만큼의 비용이면 새로운 시도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도 마찬가지이다. 창창한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나 죽고 살고를 결정하는 일 앞에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도전과 모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퇴근 후 유튜브 시청 대신 러닝 크루에 참여하는 일, 생각하지도 않았던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는 일, 온라인 줌으로 하루 10분 명상에 도전할 수 있다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더 큰 모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작은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다.
미국 할머니 배디 윙클(95)은 320만 팔로우를 지닌 패셔니스타이다. 우연히 손녀의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85세에 인터넷 스타로 등극했다. 평범했던 그녀는 남편과 아들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생을 좀 더 모험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패션 철학은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이다.
157센티의 키에 미키원피스를 입고, 형광 주황색 탑 원피스를 입고 롱부츠를 신는다. 무지개 색 털치마를 입고 스팽글이 주렁주렁한 청바지를 입으며 온몸으로 패션을 즐기고 있다. 그녀의 팬들은 나이를 잊고 자신만의 별난 패션 감각으로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옷을 자유롭게 입으며
한 번뿐인 삶을 만끽하고 위해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지금 바로, 거친 원석처럼,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금광처럼,
자신 안에 숨어있는 모습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해 보자.
입고 싶지만 너무 튈까 봐, 이상해 보일까 봐 못 입고 내려놓은 옷들을 입어보자.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늘 입어왔던 스타일 말고 다른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일이다. 이 삶을 넘어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일이다. 스스로 틀을 깨고 자신을 확장하는 일이다.
새로운 시도만큼 삶의 지평이 넓어지고, 넓어진 만큼 자유로워진다.
* 용기를 내어 한발 더 내 디뎌 보면 그곳이 허공이 아니고 단단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