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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Oct 19. 2024

부모도 나처럼 흔들리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여름 원피스를 검색하다 오래전에 올려진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글쓴이는 걷는 모습이 특이할 뿐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는 뇌성마비 여성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여름이 오면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치마를 입고 싶지만 망설이게 되는 이유에 대해 적고 있었다. 쇼핑을 하다 치마를 고르면 ‘그걸 입고 다니다가 넘어져서 속옷이라도 보이면 무슨 망신이냐?’는 말을 들었고, 어쩌다 조금 화사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면 평소보다 두 배의 눈길을 받다 보니 이제 자유롭게 치마 한 벌 입기도 어려운 자신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내 마음을 자극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땐 치마를 많이 입었는데 사춘기가 되자 옷장에서 치마가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여름 치마 하나 사는 것도 엄마의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엄마는 몸이 불편한 딸이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몸을 흔들며 걷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움직이기 편해야 한다는 이유로 치마를 못 입게 하신다고 했다. 


장애 여성의 엄마는 세상의 시선들로부터 딸을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딸보다 더 거리의 시선을 버거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부모이기 이전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만져진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일까?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세계이자 전부이다.

나의 생명이 비롯된 곳이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절대적 존재이다.

부모의 가치관에 나를 맞추고 나의 부모는 훌륭하다고 믿고 사랑하는 것은 세포에 각인된 숙명적인 생존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가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항상 옳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고 실수하고 흔들린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부모로부터 온 상처는 깊다.

우리는 그 상처를 오래 들여다보며 산다.

용기를 내어 내 상처를 끄집어내어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뜻한 이해와 사랑이 아니라 냉담이나 무시일 수도 있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며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안고 산다. 마땅히 받아야 할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해도 어린 시절은 지나가고 나이는 먹는다. 입고 싶은 치마를 입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부모의 지지는 여전히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부모이기 이전에 우리처럼 나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일 뿐이다. 내 부모 역시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다 늙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랑받지 못해 주는 법을 모르고 공감받지 못해 공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모의 불완전함과 상처를 연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나는 더 이상 어린 피해자가 아니고 부모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연민하면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하면 비로소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뚜벅뚜벅 내 인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부모도 자식의 사랑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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