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나갔다. 아들만 없는 날은 서점이나 쇼핑, 아들이 안 먹는 음식을 먹곤 하는데 딸만 없는 날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참, 등산이 있었네. 하지만 그 고민을 하던 중 아들이 카톡을 확인하더니 "친구들이 놀자는데?" 한다. 그렇게 아들도 금세 집을 나섰다.
남편과 나만 남으면 무얼 할까? 샤워 중인 남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나갈 준비를 한다. 점심을 먹으며 "여보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하고 묻는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면서. "글쎄... 나야 뭐.." 이미 예상한 남편의 답이다. "그럼, 걸어서 카페 가자. 내가 찜해 둔 곳이 ○○랑 ○○인데, 어디 갈래?"
오늘은 장갑도 챙기고. 옷도 따뜻하게 입었다. 오늘도 여전히 춥구먼. 남편과 팔짱을 끼고 바람을 막는다.이 추운 날 한 시간 거리의 카페를 걸어가자는데도 불평 없이 따라나서는 착한 남편이다. 다만 팔짱을 끼고 빠른 걸음을 걸으려니 힘들다. 2인 3각처럼 발을 맞추어 보다가 팔짱을 빼냈다. 걷다 보니 열이 나기 시작한다. 어제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길거리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니 눈을 찌푸리게 된다. 가을에 떨어져 밟히고 발에 밟혀 눌어붙은 은행까지. "옛날에는 어머님들께서 다 주워 가셨을 텐데, 요즘은 매연 때문에 이것도 안 줍잖아." 난데없이 가로수로 은행나무의 장단점을 나열하며 길을 걷는다.
새로운 카페라고 찾아간 곳이 익숙하다. 예전에 친구들과 왔던 커피스미스가 있던 자리잖아. 그때 그림 그리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엉뚱하게 다시 오게 됐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흰 종이 위에 자릴 잡아 본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ㅇㅇ중학교가 보인다. 수성구 다음으로 교육열이 센 학교다. 다 같이 여유롭게 살면 될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다 같이 힘들게 사는 걸까.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낙오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목적도 없이 꿈도 없이 자녀들에게 지나친 성실과 열심을 요구한다. 마냥 천진난만하게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고자 한다면 결국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보다 잃어버린 유년기의 대가가 더 큰 것 같다. 행복한 유년기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빡빡한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 다른 예체능 학원을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유롭게 놀며 유년기를 보내보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되는 세대에 이르렀다. 아무렇게나 뛰어노는 아주 단순한 어린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해 상상도 할 수 없고, 아이에게 허용할 수도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영영 사라져 버릴까 덜컥 겁이 난다. 아이들에게조차 마음대로 노는 건 게으르다는 잣대를 갖다 대 버리는 세대가 될까 두렵다.
학교를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의 수없이 많은 창문을 그리면서 마음이 답답해온다. 창 앞에 보이는 폐공장이 오히려 따스해 보이는 것은 지나친 편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