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남이 골라주는 음악만 들어

by joyfulmito

오랜만에 차에 시동을 걸었다. 너무 오래 운전을 안 해서 방전되었을까 봐 잠시 긴장했다. 차를 끌고 주차장 밖으로 나가면서 아... 맞다. 나 운전하는 거 좋아하지 싶었다. 딸은 차에 타자마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묻는다. 골라놓은 음악 리스트 중 시간에 맞는 리스트를 고르기 위해서다. 평소에 음악을 잘 듣지 않는 나는 딸 덕분에 많은 음악을 듣게 된다. 특히 나 스스로는 절대 듣지 않을 랩 음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딸 덕분에 학교 우리 반 아이들이 듣는 음악을 나도 꽤 알고 있지. 가끔은 신세대 코스프레를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쇼핑을 하러 나왔다. 20대엔 '나의 유일한 운동은 쇼핑이야'라고 했었다. 옷 구경 하기를 워낙 좋아해서 시내든 백화점이든 시장이든 한 번 나서면 안 본 곳이 없을 만큼 샅샅이 뒤지며 쇼핑을 했었다. 물론 자주 나가기도 했고. 오늘은 오랜만에 쇼핑몰에서 걷기 운동을 하면 되겠네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동행자가 있을 때는 샅샅이 뒤지며 모든 매장을 섭렵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혼자 쇼핑하는 걸 좋아했었지. 친구와 쇼핑을 하는 날엔 친구를 보낸 후 한참을 더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하지만 딸을 먼저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딸의 코트를 사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 그렇다고 해서 이 한 시간을 운동 시간에 끼워 넣기는 양심에 걸린다. 옷을 입어 보고 천천히 둘러보느라 걸음은 몇 보 옮기지도 않았다구.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 오늘 겁나게 추운데. 내가 생각해도 참 못 말리는 역마살이다.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머리가 시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 닥친다. 역시 일기예보도 안 보고 아무렇게나 입고 나왔지 뭐야. 통바지 안으로 바람이 휙휙 들어온다.


그래도 꾸준히 걸음을 옮기며 두리번두리번 그림 그릴 장소를 찾는다. 중간중간 네이버 앱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괜찮을 거라 생각한 곳에 도착했는데 창 밖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머리를 저으며 또다시 걸음을 옮겨 결국엔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낸다. 정말 예쁜 카페가 너무 많다. 겨울이라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는 힘들어서 카페를 찾지만 날이 따뜻해져도 카페 투어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은 따뜻한 연유 라떼를 한 잔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는 이미 한 잔 마셨으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매일 그려도 질리지 않는다. 벌써 4년째인데, 어반스케치에 대한 열정은 시들지 않는다. 그림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정말 내게 딱 맞는 장르다.


7080 감성의 오래된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딸의 선곡과는 전혀 다른 감성의 옛날 노래들이 내가 그리고 있는 풍경과 잘 어울린다. 나의 노래방 18번이었던 곡도 흘러나온다. 노래를 좋아하진 않지만 젊은 시절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가 돌아오는 내 차례를 간신히 넘기기 위해 나름 준비해뒀던 레퍼토리가 있었다. 이거 맞아.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던 건데. 노래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곡을 따라 부르다 피식 웃음이 난다. 그렇게 많이 불렀는데 이 노래가 이런 가사였어?


그림을 마무리하고 인증샷을 찍은 후 가방을 꾸리다 보니 서비스로 주신 쿠키가 눈에 보인다. 오늘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쟁반을 갖다 두려니 괜스레 죄송하다. 그렇다고 지금 먹자니 음료도 다 마셨고.. 목 막히는 쿠키를 물과 먹고 싶지도 않다. 다음번엔 서비스로 주시는 거는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을 담아 크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 저녁거리를 걱정한다. 늘 그렇지만 방학 동안은 메뉴를 정하는 게 더 힘들다. 세 끼를 집에서 먹다 보면 모든 메뉴가 지겹다. 집에 돌아오는 길 관문시장을 통과해 가기로 했다. 반찬 가게가 즐비하다. 밑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반찬 가게에는 흥미가 없다. 고기나 사 가서 구워 먹을까 했는데 정육점은 보이지 않고 엄마가 자주 사 오셨던 옛날 통닭집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줄을 섰다. "한 마리요." 나도 모르게 주문도 끝냈다. 치킨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노을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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