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개학을 했고, 아들은 티볼 수업을 가고 나니 오늘은 오전이 여유롭다. 이럴 땐 잽싸게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360도를 돌면서 어느 방향으로 가보지 않았는지 잠시 고민한 후 걸음을 옮긴다.
30분쯤 걸어 우리 동네를 벗어나니걸어보지 않은 동네가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차를 타고 자주 지나다니긴 했지만 차로 지나간 길과 발로 걸어간 길은 온도차가 크다. 길을 걸으며 찬찬히 들여다 보고 그림 그릴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띈다.평범한 길을 걸으면서도 여행자이자 탐험자가 되고 나면 발걸음엔 신바람이 붙는다.
이른 아침에 나섰더니 아직 문을 연 카페가 잘 없다. 한참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는 들러야겠다고 카페를 몇 군데 눈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길거리에 세워서 입간판 하나를 보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주택을 개조한 예쁜 카페 하나가 나타났다. 네이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걸 보니 생긴 지 얼마 안 됐나 보다.오픈 기념으로 아메리카노가 2000원이라니. 이 시간에 문이 열려 있는 것만도 감사한데, 겨우 2000원에 음료와 이 좋은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네.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스콘 구우셨다며 맛보라고 한 접시를 내어 주신다. 따뜻한 말투와 친절함에 한없이 기분이 좋아진다.단골 하고 싶어지는 카페다. 늘 다른 곳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단골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지만 집 근처에 아지트를 하나 마련한다면 여기로 정하겠어.
요즘 카페가 워낙 많이 생기고 사라지니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지 괜히 걱정이 된다. 좋은 공간은 오래도록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카페 사진을 정성껏 찍어 인스타에 올려본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주택지구를 그리는 게 참 재미있다. 비슷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다양한 집들을 그리는 재미가 있지. 대단한 건축가가 설계하진 않았겠지만 각 가정의 요구와 개성이 반영된 건축물들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따스한 사람의 온기를 품은 장면이다. 내가 주택가의 작은 카페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이유다. 아파트에 살면서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내 마음이 반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왔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웃 간의 온기는 부족하지만 사랑의 온기가 가득한 우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