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걸까

by joyfulmito

높은 건물이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아기자기한 주택단지로 들어선다. 잘 갖추어진 조경이 없어도 주택단지에는 볼거리가 많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듯하면서 조금씩 다른 집들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아파트에도 집집마다 다양한 이야기는 있을 텐데 그 이야기들은 단단히 갇혀 있어 어느 것 하나 노출되지 않는다. 꼭꼭 갇힌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거나 범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택단지의 집들은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곳곳에서 주인의 손길이 드러난다. 화분이 가득한 집들도 있고, 오래된 고목이 쓰러지지 않게 묶어 놓은 집도 보인다. 새로 덧칠한 페인트 색깔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 길을 걸으며 문득 몇 년이 지나면 이런 동네도 많이 남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동네들 마다 재개발 바람이 불어 이야기가 가득한 집들은 사라지고 영락없이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만날 수 있을 때 많이 걷고 많이 그려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꽤 나 높은 담 너머로 고개를 쑥 내민 개를 한 마리 만났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내 얼굴 높이에 개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입에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바로 그 전날은 주인 없는 개를 만나 혼자 움찔해 놓고선 내 영역으로 넘어올 수 없는 개를 보니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사진도 찍는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어릴 적 살던 시골 우리 집에도 개를 키웠는데 한 번도 그 개를 귀여워했던 기억이 없다. 우리 집 마당에 매어져 있던 개를 유심히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태풍이 오던 어느 날 대구 큰집으로 피신해 오면서 혹시나 위험한 경우를 대비해 개를 풀어두고 갔는데, 태풍이 지나간 후 돌아와 보니 집에서 키우던 오골계를 다 잡아먹었던 것이 그 개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그 이후에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개가 짖어 놀랐던 기억, 나를 향해 달려와 들고 있던 가방을 휘두르며 소리소리 지르며 도움을 청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여행 중에 만난 개를 보고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인이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던 적도 있었다. 아무리 작고 예쁘게 생겨도 내게 개는 무서운 존재일 뿐이다. 그 무서운 존재를 보고서 혼자 미소 지으며 유명인을 만난 것마냥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다.


그러고 보면 여행 중 자연에서 동물을 만날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신이 났었다. 공원을 걷다 마주친 아기 다람쥐 세 마리와 너구리 한 마리, 학교 뒤뜰에서 만난 후투티, 늪이나 습지에서 만난 다양한 철새들, 호주 공원에서 만났던 신기하게 생긴 꽤 나 덩치 큰 새들, 샌프란시스코에서 봤던 무수히 많은 바다사자, 몰디브 바닷가에서 본 아기 상어와 박쥐, 스노클링을 하며 만난 다양한 물고기들, 괌에서 돌고래 투어를 갔다가 우연히 만난 날치 떼…. 자연에서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함께 있던 누구보다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질렀었는데…. 과연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걸까?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다양한 동물을 키웠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좋아하거나 애정을 준 적이 없었다. 고모들이 놀러 오신 날 우리 집에서 키우던 토끼를 잡아먹었었는데, 내가 울기는커녕 다른 식구들과 맛있게 먹더라는 이야기를 엄마는 두고두고 하셨다. 분명 내가 먹이도 주며 키우던 토끼였을 텐데 나는 왜 그랬을까?


동물에게도 나는 여행지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익숙한 곳에는 관심 없고 늘 새로운 곳만 찾아다니는 호기심 말이다. 오늘 산책 중에도 연못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처음 보는 새 한 마리에 환호했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나 참새에게는 관심도 없으면서 말이다.


오늘도 나는 내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걷는다. 처음 가 보는 카페에 앉아 이야기가 있는 집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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